美·日은 2시간 남짓, 韓만 평균 5시간 회의
전문성 떨어지는 비상임위원제가 문제
2021년 1월 22일에 열린 제132회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회의. 오전 10시 33분에 시작한 회의는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을 지나서 오후 11시 9분에 끝났다. 회의 시간만 12시간 36분으로 역대 원안위 회의 중 가장 긴 시간으로 기록됐다. 당시 회의를 주재하던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폐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기 전에 “자정을 넘기는 게 아닌가 해서 굉장히 걱정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마라톤 회의가 일상이 된 원안위의 비효율적인 운영을 꼬집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이 보고서는 전문성이 부족한 비상임위원 중심의 운영과 비효율적인 회의체 운영이 원안위뿐 아니라 국내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9일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 제206회 원안위 회의 모습./원자력안전위원회
19일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 업계에 따르면, 김서용 아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원안위 회의체 운영의 효율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김 교수가 원안위에 제출한 보고서는 2011년 11월에 열린 제1회 원안위 회의부터 2024년 7월 11일 열린 제198회 회의까지를 분석했다.
원안위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안전을 총괄하기 위해 설립된 차관급의 중앙행정부처다. 원안위는 상근직인 위원장과 사무처장을 포함해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상근직을 제외하면 나머지 위원 7명은 비상근으로 회의에 참석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이후 평균 회의 시간은 5시간 3분으로 나타났다. 2017년(2시간 49분)을 제외하면 평균 회의 시간이 4시간을 밑돈 적이 없다. 보고서 분석 대상이 아닌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9일 열린 제206회 회의는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해 6시간을 넘긴 오후 4시 32분에 끝났다.
미국이나 일본은 다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나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 회의는 2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고서는 한국 원안위만 유독 마라톤 회의를 하는 이유가 비상임위원 중심제에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일본은 5명의 위원이 모두 상임위원이다. 보고서는 “비상임의 경우 참여가 고정적이지 않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안위 위원을 지낸 한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국회에서 비상임위원을 추천하다 보니 원자력에 대한 전문성보다도 정치 성향에 따라 위원들의 의견이 갈릴 때가 많다”며 “만장일치를 추구하다 보니 소위 빌런(악당)으로 불리는 한두 명의 위원이 막무가내로 반대하면 회의 시간이 부질 없이 길어지는 게 다반사다”라고 말했다.
회의체 운영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미국은 NRC가 아닌 기술관료들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NRC 위원들은 쟁점이 되는 사안만 최종 승인을 하는 구조다. 허가 관련 회의와 그 외에 단순한 보고 안건 등을 구분하기도 한다. 일본 역시 모든 안건을 NRA 회의에 올리지 않고 회의의 유형을 구분한다.
보고서는 “원안위 회의 안건은 크게 신규원전 논의와 기존 원전의 변경허가 안건으로 나뉘는데, 허가가 필요한 안건의 경우는 위원회 논의가 필요하지만 변경허가 안건의 경우는 중요도가 높지 않은 경우에도 위원회 논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원안위의 사전 자문기구 성격인 전문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고, 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와 3인 이내의 소위원회를 분리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나 국민권익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다른 위원회 방식의 정부부처들은 이미 도입한 제도다.
원안위는 향후 원안위 회의체 운영 방안과 관련 법령 개정 때 보고서 내용을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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