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연구팀, 국제학술지 공개
원거리 이동한 중성미자임에도… 수-진동 등 유의미한 변화 없어
‘마이크로블랙홀’ 존재 주장한… 양자중력 이론 일부 가설 반박
지중해 해저 2450m에 설치된 유럽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검출기(KM3NeT)의 ORCA 탐지기에서 일어나는 중성미자 검출 과정을 시각화한 그림. KM3NeT 제공
과학자들이 지중해 해저 2450m 아래에 설치된 중성미자 검출기 데이터를 활용해 양자역학과 중력의 연결고리를 찾고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인 ‘양자 중력(quantum gravity)’ 모델 일부가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나자 레싱 스페인 발렌시아대 물리학과 연구원팀은 유럽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 검출기(KM3NeT)에서 수집된 중성미자 데이터를 통해 양자 중력 이론의 새로운 한계를 제시하고 연구 결과를 20일 국제학술지 ‘우주론 및 천체 입자 물리학 저널’에 공개했다.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이 거의 없어 ‘유령 입자’로 불리는 우주의 기본 입자다.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힘과 입자를 설명하는 표준 모형에 따르면 기본 힘 4가지는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 중력이다. 전자기력, 약력, 강력은 1900년대에 제시된 양자역학을 통해 통합적으로 설명됐지만 중력과 양자역학의 연결고리는 명확하지 않았다.
양자 중력 이론은 양자역학이 작용하는 규모에서 중력을 설명하려는 물리학의 한 분야다. 일부 양자 중력 이론에 따르면 거대한 블랙홀과 성질은 같지만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마이크로블랙홀’이 우주 이곳저곳에서도, 우리 주변에서도 생성·소멸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마이크로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증명할 만한 실험 환경을 갖추기는 어려웠다.
중성미자는 질량이 거의 없고 전하도 띠지 않아 다른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거의 없다. 지구 대기 중에서 생성되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천체에서 지구까지 날아오기도 한다.
중성미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검출된다. 중성미자가 매우 낮은 확률로 물 입자 등과 상호작용하면 ‘이차입자’가 생긴다. 이때 발생하는 빛을 광학 센서로 감지하면 중성미자의 에너지와 날아온 방향 등을 역추적할 수 있다. KM3NeT의 검출기 중 하나인 ORCA가 물이 풍부한 지중해 수심 2450m에 설치된 이유다. 다른 중성미자 검출기도 보통 바다나 호수, 빙하 등에 설치된다.
중성미자는 생성하는 이차입자의 종류에 따라 전자·타우·뮤온 중성미자 세 가지로 나뉜다. 지구 대기에서 생성된 중성미자는 날아가면서 서로 변환되는 특성이 있다. 전자 중성미자가 타우 중성미자로, 타우 중성미자가 뮤온 중성미자로 변화하는 식이다. 일정한 주기로 바뀌기 때문에 ‘진동’ 특성이라고 한다.
양자 중력 이론에 따르면 중성미자는 마이크로블랙홀과 상호작용하면서 일부가 사라지거나 이런 진동 특성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 반대편에서 생성된 대기 중성미자가 지구를 뚫고 검출기까지 약 1만 km를 날아오는 동안 마이크로블랙홀과 충돌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하면 검출기 가까이에서 생성된 중성미자들과 비교했을 때 그 수가 줄어들거나 각 중성미자의 비율이 달라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성미자 외의 입자들은 보통 주변 환경과 강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1만 km에 달하는 시공간 규모에서 실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중성미자가 마이크로블랙홀의 존재를 테스트할 수 있는 입자로 지목됐던 이유다.
연구팀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ORCA 검출기에서 수집한 대기 중성미자 데이터를 활용해 진동 특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멀리서 날아온 대기 중성미자의 수나 진동 특성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블랙홀의 존재를 가정하는 일부 양자 중력 이론을 실험을 통해 반증한 것이다.
하창현 중앙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 중력 이론에서 예측한 다수의 마이크로블랙홀이 중성미자 실험 결과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마이크로블랙홀을 제시하는 일부 양자 중력 이론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블랙홀 |
거대한 블랙홀과 성질은 같지만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블랙홀이다. 양자역학과 중력의 연결고리를 설명하는 양자 중력 이론의 일부 모델에 따르면 마이크로블랙홀은 우리 주변을 포함한 우주 이곳저곳에서 발생하고 소멸되기를 반복한다. |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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