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거미류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다. 낚시거미(fishing spider)라는 영문명처럼 닷거미는 수표면에 다리 끝을 대고 기다리고 있다가 가까이 온 물고기를 감지하면 순식간에 물속으로 다리를 오므려 인형 뽑기 하듯이 물고기를 가둔다. Kuang Ping Yu 제공
거미는 훌륭한 사냥꾼인 동시에 단백질이 풍부한 사냥감이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크기순으로 나열했을 때 거미는 중간쯤에 자리한다.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이 매우 많은 동시에 그만큼 많은 동물에게 사냥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거미는 다양한 포식 전략과 반포식 전략을 갖고 있다.
거미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성이다. 최근 식물성 점액을 주식으로 삼는 거미가 발견됐으나 절대다수가 육식성인 것은 사실이다. 야생에서 대부분의 거미는 살아있는 먹이만을 노린다. 이 말의 의미는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먹이의 필사적인 저항을 평생 반복적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 거미의 숙명이란 뜻이다.
먹이가 다양한 만큼 이들의 포식 전략도 다양하다. 사냥꾼 거미의 전략이 총천연색인 이유이다. 훌륭한 사냥꾼 거미는 훌륭한 사냥감이기도 하다. 육식성인 거미는 단백질이 풍부한 먹이이기 때문이다. 사냥꾼과 사냥감 노릇을 모두 하는 거미는 먹이사슬의 중간층에서 육상생태계를 유지하는 핵심 교두보 역할을 한다.
잡아먹힐 일도 많으니 사냥감 거미가 포식자를 피하는 반포식 전략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자연선택이 부여한 생존과 번식이라는 공통된 과제를 사냥꾼 거미와 사냥감 거미가 어떻게 풀어 나갔는지 두 상반된 입장에 선 거미들의 흥미로운 포식 전략과 반포식 전략들을 살펴보자.
밤에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투망거미. 보풀이 잔뜩 일어난 투망을 앞다리로 펼치고 있다. 검고 큰 눈망울이 돋보인다. Frank Vassen 제공
● 포식전략 : 거미줄 사용하기
여름날 저녁 산책길 나뭇가지와 가로등 사이에 걸쳐진 거미줄을 보면 거미가 사냥감을 기다리는 전략만 쓴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사냥법은 극히 일부다. 거미줄을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거미 사냥꾼은 기상천외한 거미줄 운용법을 보여준다.
투망거미는 거미줄로 직사각형 투망을 만든다. 이 투망을 앞다리로 펼쳐 붙잡은 채로 거꾸로 매달려 먹이를 기다린다. 투망을 구성하는 거미줄은 점성이 전혀 없다. 대신 방적돌기에서 분비될 때 뒷다리의 빗 모양의 구조물로 거칠게 빗겨진다.
그 결과 1만~2만 5000가닥의 초미세 실로 갈라진 거미줄이 불규칙하게 얽혀 투망을 만든다. 거미는 투망을 던져 먹이를 사로잡고 사로잡힌 먹이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풀어헤쳐진 스웨터 보풀 한가운데에서 헤엄치는 꼴이 된다.
투망거미는 몸 크기 대비 가장 큰 눈을 가진 거미다. 이는 야간에 움직이는 먹이를 포착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진화한 결과다. 밤에 극미량의 빛을 감지하는 투망거미의 능력은 인간의 눈보다 2000배 가량 뛰어나다. 이러한 눈과 투망의 합작으로 투망거미는 상대적으로 포식자가 적은 밤에 먹이활동을 하고 낮엔 쉴 수 있다.
특이하게도 어떤 투망거미 종은 수컷이 종령(성충이 될 때 까지 탈피가 한 번 남은 상태)에서 완성체로 탈피했을 때 몸은 커지지만 눈크기는 작아진다.
수컷 완성체는 사냥을 전혀 하지 않고 짝짓기할 암컷만을 찾아다닌다는 관찰에 비추어 연구자들은 사냥꾼을 졸업한 수컷이 짝 찾기와 생식세포에 대한 자원 투자를 늘리기 위해 사냥에 필요한 자원 투자(눈 크기)를 줄인 결과로 보고 있다.
거미줄 활용의 또 다른 고수인 호주의 개미학살자거미는 편식가다. 개미학살자거미는 오직 유칼립투스 나무에 군체를 꾸린 설탕개미만 잡아먹는다.
거미가 편식가인 것도 이상하지만 하필 자기보다 몸이 2~3배는 크고 상대를 물어뜯는 턱을 갖고 있으며 개미산은 물론 수많은 동료로 무장한 설탕개미를 사냥감으로 삼는다는 건 해괴하다.
하지만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개미학살자거미는 이 위험한 먹이에 극도로 특화된 사냥법으로 이를 극복한다.거미는 거미줄 한 가닥을 나무줄기에 붙여놓고 개미를 기다린다. 개미가 나무를 타고 기어 올라오는 것을 감지하면 사냥이 시작된다.
거미는 뒷다리로 거미줄을 잡고 나무줄기 아래로 뛰어내린다. 목표는 개미다. 거미는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면서 뒷다리로 잡고 있던 점액성 거미줄 한 가닥을 재빨리 개미의 몸에 붙인다.
착지한 후 남은 거미줄을 나무에 고정하는 데까지 고작 0.3초밖에 걸리지 않으며 개미는 순식간에 나무에 붙게 된다. 번개 같은 사냥법의 성공률은 무려 85%에 육박한다. 위험한 먹이에 특화된 사냥법을 익힌 대가는 상당하다. 다른 경쟁상대 없이 떼거리로 다니는 개미를 독점하는 것이다.
포샤깡충거미가 갈거미류로 추정되는 거미를 잡아먹고 있다.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사냥할 때는 일부러 거미줄을 다리로 흔들어 자신이 먹이인 척 속이고 다가온 주인을 잡아먹는 신기를 보인다. Roy Kittrell 제공
● 포식전략 : 먼 길 도는 것을 마다치 않기
거미의 지능적인 사냥전략에 대해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뤄진 모델은 깡충거미다. 투망거미와 정반대로 주행성 사냥꾼인 깡충거미는 낮에 움직이는 먹이를 시각적으로 포착하고 추적해 잡아먹는 능력이 탁월하다. 포샤깡충거미는 편식하진 않지만 특정 먹이를 사냥할 때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포샤깡충거미는 거미 사냥꾼이다. 필리핀의 포샤깡충거미는 가죽거미를 사냥한다. 가죽거미는 원거리에서 입에서 분비되는 점액을 뱉어 먹이를 무력화시키고 잡아먹는다. 제아무리 포샤깡충거미라도 가죽거미의 점액질에 당하면 위험하다.
그래서 포샤깡충거미는, 가죽거미를 발견하면 직진하지 않고 우회로를 그리며 먼 길을 돌아 가죽거미의 뒤통수에서 몰래 접근해 덮친다. 정면으로 접근하다가 포착돼 입에서 나오는 점액에 당할 확률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포샤깡충거미는 위험한 먹이가 취약한 순간을 구분한다. 알을 낳은 가죽거미 암컷은 알집을 입으로 문 채로 지키는데 이때는 점액을 뱉을 수 없다. 포샤깡충거미는 알집을 물고 있는 가죽거미를 포착했을 때는 우회를 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직진으로 공격한다.
놀랍게도 평생 가죽거미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개체도 학습 없이 알을 문 가죽거미와 물지 않은 가죽거미를 구분해 사냥전략을 수정한다. 하지만 이 능력은 오직 야생에서 가죽거미와 서식지가 겹치는 개체군에서만 나타난다.
연구진이 가죽거미와 서식지가 겹치지 않는 포샤깡충거미 개체군으로 실험한 결과 이들은 알을 물고 있지 않은 가죽거미에게도 직진하다가 점액에 당해 잡아먹혔다. 포샤깡충거미의 능력은 위험한 먹이와의 오랜 공존이 이뤄진 서식지에서만 특이적인 사냥 전략의 진화가 일어난 지역적응(local adaptation)의 결과인 것이다.
개미(위)와 그를 따라 하는 개미거미(아래). 잔뜩 확대한 사진인데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Ayush Parag 제공
● 반포식 전략 : 판단하고 흉내 내기
거미의 반포식 전략 또한 상황에 따른 유연성이 돋보인다. 늑대거미 일종의 수컷은 암컷에게 구애할 때 검은 술이 달린 다리를 연신 흔드는 춤을 춘다. 한 연구에서는 구애의 춤을 추는 늑대거미 수컷에게 새가 가하는 포식 위협을 가했을 때의 반응을 살펴봤다. (doi: 10.1016/j.anbehav.2008.12.025)
부리 모형으로 바닥을 두들겨 새가 바닥을 부리로 쪼는 자극을 줬을 때 늑대거미 수컷은 춤을 멈추고 얼어붙어 가만히 있었지만 거미 위로 모형의 그림자를 드리웠을 때는 즉시 도망갔다.
바닥을 쪼는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새가 가까이 있을 때는 춤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 것이 발각되지 않을 확률을 높여주겠지만 새가 날고있어 아직 먼 상황에서는 도망쳐서 은신처를 찾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개미거미의 개미 흉내 내기는 거미류 의태(다른 사물이나 생물의 형태를 흉내 내는 것)의 대표적 예시다. 대부분의 포식자가 선호하지 않는 개미를 흉내 냄으로써 사냥꾼의 선택을 피하는 것이다. 개미거미는 앞다리 한 쌍을 위로 쳐들어 자신에겐 없는 개미의 더듬이를 따라 하고 동시에 8개인 다리를 개미와 같이 6개로 보이게 한다.
개미거미도 위기에 직면할 때가 있다. 수염깡충거미속의 한 종은 개미를 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데 황당하게도 개미거미가 개미 흉내를 너무 잘 낸 대가로 개미로 오인돼 잡아먹히기도 한다. 개미거미는 이 깡충거미를 마주하면 앞다리로 개미 더듬이를 흉내 내던 것을 멈추고 '거미처럼' 행동해 자신이 개미가 아님을 알아차리게 한다.
● 반포식 전략 : 다리 내어주기
자절(autotomy)은 포식자에게 잡혔을 때 몸의 일부를 내어주고 도망가는 반포식 전략이다. 꼬리를 내어주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대부분의 거미도 포식자에게 다리를 내어주고 목숨을 건진다.
특히 아직 완성체가 되지 않은 어린 거미는 탈피를 반복하면 잘린 다리가 점차 재생되기 때문에 다리를 내어준다고 해도 큰 손해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다리를 재생할 수 없다면 어떨까? 당장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다리를 잃어버리기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힘들 것이다.
얇고 긴 다리를 지닌 통거미 또한 반포식 전략으로 자절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거미강 생물과 다르게 통거미는 탈피를 통해 다리를 재생하는 능력이 없다. 대신 통거미는 보법을 수정함으로써 잘린 다리의 기능을 최대한 보완한다.
없어진 다리가 지탱하던 부분으로 양옆다리를 조금 더 모아 무게중심을 이전과 유사하게 맞추고 보행 시 몸통의 높이는 낮춰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보행 중 동시에 땅에 닿아있는 다리의 수도 수정한다.
통거미는 이러한 적응을 다리를 잃은 후 매우 짧은 시간 내에 해낸다. 8개의 다리 중 무려 3개를 잃은 통거미는 자절 직후에는 속도와 가속도가 50%가량 감소하지만 겨우 이틀 만에 다리가 멀쩡하던 때의 보행능력을 완벽히 회복한다.
그렇다고 잃은 다리의 대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리는 기동 뿐만 아니라 먹이활동, 경쟁, 짝짓기에도 중요하다. 한 연구에서는 핀셋으로 통거미의 다리 끝을 잡아 포식 자극을 줘 자절을 유도하면서 다리를 내어줄 때까지의 지연시간을 측정했다.
첫 번째 다리를 잡혔을 때는 대부분의 개체가 1분 이내에 자절했다. 두 번째 다리를 내어줄 때부터는 지연시간이 분 단위로 늘어나더니 네 번째 다리를 내어줘야 할 때는 10분을 기다려도 다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야생에서 통거미를 채집할 때 다리를 4개 이상 잃은 개체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어차피 다리를 그 이상 내어주는 개체는 그 순간에 포식자로부터 살아남더라도 여생이 가망이 없으니 조금이라도 생존 확률이존재하는 '버티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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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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