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통 터지듯이 불기둥 솟아올라"
"회오리처럼 불어난 불이 갑자기 다가와"
"곧 농사철인데…농기계 모두 불타 막막"
"건물 그을음, 닦아도 지워지지 않고 냄새"
[의성=뉴시스] 이무열 기자 =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23일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한 주택이 산불로 전소돼 폐허가 되어 있다. 2025.03.23. lmy@newsis.com
[의성=뉴시스] 김진호 기자 = "어젯밤에는 걱정이 돼서 한숨도 못잤어요. 곧 농사철인데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네요. 농기계와 연장들을 넣어뒀던 창고가 불에 모두 탔어요. 보상이라도 빨리 해주면 농사 시작 전에 연장부터 사놓을 수 있을텐데. 닦아도 닦아도 그을음은 계속 나오고 냄새도 지워지지 않네요."
대형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23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는 매캐한 냄새로 진동했다. 마을 앞 논 한 켠에 수북히 쌓아놓은 퇴비에서는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는지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앞·뒷산은 모두 불에 타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본채 유리창을 닦고 있던 김명숙(66·여)씨는 이제 곧 시작해야 할 봄농사 걱정부터 앞섰다.
"남편하고 외부에 갔다가 돌아오니 산불 때문에 마을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더라구요.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마을 입구에 서서 옆집과 우리집 창고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소방관들이 물을 뿌려 어느 정도 불을 끈 후에 집에 와봤어요. 트럭, 전동손수레, 예초기, 선별기 등 농기계가 모두 탔어요. 20년간 정성들여 키운 정원의 소나무도 타버렸어요. 너무 속상하네요."
[의성=뉴시스] 이무열 기자 =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23일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한 주택이 산불로 전소돼 폐허가 되어 있다. 2025.03.23. lmy@newsis.com
전날 오전 11시 24분께 인근 괴산리 야산에서 성묘객 실화로 인해 시작된 산불을 신월리도 피해갈 수 없었다. 풍속 6.1m/s의 강한 서풍을 타고 확산되면서 불과 4㎞ 가량 떨어진 신월리도 앞산과 뒷산이 모두 불타면서 가옥 몇 채도 소실됐다. 옆집 건물이 전소되면서 담장을 사이에 둔 김씨 창고도 불탔다.
바로 윗집은 뒷산이 불타면서 마당의 잔디까지 불씨가 옮겨붙었지만 다행히도 건물은 화마를 피했다.
주민 김한중(60)씨는 "바람을 타고 불과 10분 만에 여기까지 불길이 다가왔어요. 그냥 후다닥하는 순간에 타버렸어요. 휘발유통 터지듯이 불기둥이 솟아올랐어요"라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의성=뉴시스] 이무열 기자 =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이틀째인 23일 의성읍 한 농산물 선별센터가 산불로 전소돼 있다. 2025.03.23. lmy@newsis.com
김씨는 이날 불길이 신월리를 향해 다가오자 친구집으로 대피했다. 집에 설치해 놓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집으로 다가오는 산불을 휴대폰으로 지켜봤다. 그러다가 마을에서 2차화재 방지를 위해 전력을 차단하면서 CCTV 화면도 꺼졌다.
"그 순간부터는 상황 파악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우리집도 다 타버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와보니 다행히도 마당 잔디만 태웠네요. 웃집과 아랫집도 다 탔는데."
의성체육관으로 대피한 환자들을 돌보고 있던 모 요양원 의료지원과 안순옥(50·여)씨 얼굴에서도 당시 긴박했던 대피 상황이 역력히 묻어났다.
[의성=뉴시스] 이무열 기자 =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이틀째인 23일 의성읍 한 농산물 선별센터가 산불로 전소돼 있다. 2025.03.23. lmy@newsis.com
"철파리 산 너머에서 연기가 솟아올랐어요. 문을 안 열었는데도 매캐한 냄새가 나고 연기도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비를 시작했어요. 여기 계시는 어르신들은 나이가 많으시고 못움직이니까요. 젖은 수건을 인원수대로 다 준비해 마스크 채우고, 그 위에다 물수건을 얹고. 좀 기다리고 있는데 점점 급박하게 안내 문자가 넘어오는 겁니다. 대피를 하고 있는데 회오리처럼 불어난 불이 갑자기 이렇게 오는 게 보였어요. 그 때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어요."
안씨는 요양원 관계자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환자들을 먼저 아랫층으로 이동시킨 후 휠체어로 이동할 있는 환자들을 대피시켰다. 곧이어 도착한 소방대원들까지 합세해 중증 와상환자들을 안거나 업어서 요양원 밖으로 이동시켰다.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완전 중증 와상환자들을 대피시켰다. 일부 환자는 병원으로 이송조치했다.
앞서 전날 오전 11시 24분께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산61 일원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의성=뉴시스] 이무열 기자 =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이틀째인 23일 의성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 이재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5.03.23. lmy@newsis.com
확산을 막고 신속한 진화를 위해 당일 오후 2시 20분께 '산불 3단계'가 발령됐다. 산불 3단계 적용 기준은 예상 피해 100㏊ 이상, 평균풍속 11㎧ 이상, 예상 진화 48시간 이상이다.
의성 산불 진화율은 이날 오후 1시 기준 51%로 집계됐다. 전체 화선 68㎞ 중 진화 중인 화선은 33.6㎞, 완료는 34.4㎞이다. 산불영향구역은 4050㏊로 추정된다.
산림당국은 산불 확산 대응을 위해 산불진화헬기 52대, 진화인력 3777명, 진화차량 453대를 투입해 총력 진화 중이다. 기상 상황은 바람 북풍 1㎧(최대 3㎧), 기온 23.4˚C, 습도 17%다.
이번 산불로 현재까지 임야 1802㏊가 불타고, 주택 29채(전소 24채, 반소 2채, 일부 소실 3채)가 피해를 입었다. 35개마을 (693가구 1221명) 주민이 의성체육관 및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jh9326@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