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대기업, 러시아 ‘공장 가동’ 시동
LG전자, 인증후 연초 세탁기 생산
철수한 현대차, 공장 바이백 조항
현대제철 공장 가동 검토 “인력채용”
HD현대·모비스, 소규모 유지 영업 지속
中브랜드 러시아 장악에 복귀 몸풀기
한국 대기업들이 잇따라 러시아에 있는 시설 복원에 시동을 거는 까닭은 미국 중재에 힘입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서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개시한 이후 러시아 내수 시장은 상당수 중국 브랜드에 점령된 상태다.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샤오미가 점유율 23%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동차 시장 중국산 점유율도 63%에 달할 정도다.
한국 기업들은 전쟁 이전과 같은 시장 점유율 회복에 다시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연산 세탁기 50만대·냉장고 100만대 수준을 갖춘 모스크바주 루자 공장의 부분 가동에 돌입했다. LG전자는 2022년 러시아 내 모든 설비 가동을 멈췄다. 이후 작년 8월부터 산업용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냉동고에 대한 제품 규격 인증을 잇달아 받아 생산 가동을 예고했다. 해당 인증은 제조를 위한 필수 서류다. 올해 들어 생산에 돌입했다. 모스크바 매체인 루스베이스는 “LG전자는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벨라루스로 수출한 뒤 다시 러시아로 수입해 판매해왔다”면서 “하지만 이제부터는 러시아 시장에 직접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칼루가주에 연산 100만대 규모 TV·가전 생산시설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일부 라인을 모니터·서버 기업에 임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브랜드 제품 생산은 여전히 중단된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재진출 시점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는 2007년 러시아에 진출한 뒤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준공했다. 이어 2020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GM 공장을 인수해 연산 능력을 약 24만대로 끌어올리면서 해외 브랜드 가운데 점유율 1위를 8년간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2022년 3월 가동을 중단했다. 작년 1월에는 러시아 현지 업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매각했다. 다만 공장을 매각할 때 ‘2년 내 현대차가 공장을 되살 수 있다’는 바이백 조항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프터서비스(AS)를 위한 주재원과 현지 서비스 조직도 철수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바이백 기한이 아직 많이 남은 만큼 돌아가는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업체들이 러시아 시장에 다시 진출하더라도 시장을 장악해온 중국산과 경쟁해야 한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해외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뒤 지난 3년간 중국 기업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며 “러시아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으려면 성능과 품질 면에서 중국산 자동차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격차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계열 부품사들은 일부 생산을 유지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AS용 부품 생산과 다른 현지 자동차 업체들에 부품을 공급하면서 공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다만 본격적인 생산 계획을 잡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재가동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 시설을 AGR그룹에 매각했는데, AGR그룹이 종전 소재·부품사에 차 강판 등 관련 부품 공급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지 인력 채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 유지·보수 등 관리 분야 인력이 필요해서다.
이 밖에 HD현대일렉트릭은 러시아 현지 유통법인이 전력 사업을 유지하고 있고, 다음달 1일 모스크바에서 개최하는 ‘일렉트로 2025’ 전시회에도 참가하는 등 소규모 영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전쟁이 종료된다고는 하지만 사업 환경이 크게 바뀌지는 않고 있다”면서 “아직은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다만 이미 현지 시설을 청산한 기업의 복귀는 한동안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중공업이 러시아 국영 즈베즈다 조선소와 합작법인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범시켰던 ‘즈베즈다-삼성중공업’은 지난해 미국의 제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청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상덕·안두원·김동은·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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