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에도… “中시장 포기 못해”
중국에 간 팀 쿡 -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CDF)에서 팀 쿡(맨 앞줄 오른쪽에서 둘째)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개막식에 앞서 다른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팀 쿡 CEO는 중국 인공지능(AI) 딥시크를 써봤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매우 훌륭하다"고 답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대중국 기술 제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 중 중국 투자를 늘리거나 매출 비율을 높이는 곳이 나오고 있다. 최근 ‘딥시크’로 대표되는 ‘AI 굴기’와 BYD의 전기차 급속 충전, 중국의 첨단 메모리 양산 등 중국의 기술력이 확인되면서, 신산업 분야에서 중국 시장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은 최근 “중국 베이징에 올해 ‘재사용 및 수리 센터’를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름은 재사용·수리 센터이지만, ASML이 중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 기존 장비의 유지 보수와 부품 제공, 기술 제공 등에 나설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ASML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로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ASML의 매출 중 중국 비율이 예전 36%에서 올해 20%로 줄어드는 등 중국 사업이 타격을 받았다.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는 “화웨이가 자체 AI 가속기 어센드910c를 양산하는 등 중국 반도체 경쟁력이 입증되면서 반도체 산업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ASML로서는 중국 시장을 다시 보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중국 외면 못 하는 기업들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한 경제 행사 중국발전고위급포럼(CDF)에 참석해 중국 시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 벤츠 회장은 “중국 시장은 벤츠 글로벌 전략의 중요한 축이자 변화를 이끌어내는 핵심 원동력”이라고 했다. 벤츠는 현재 글로벌 매출의 3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대부분의 기기를 중국서 생산하는 애플도 마찬가지다. 팀 쿡 애플 CEO는 중국 AI 딥시크를 써봤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매우 훌륭하다”고 했다. 영국 금융기관 HSBC의 조지 엘헤데리 CEO도 “중국은 전기차, 재생에너지, 생명공학과 같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업계도 중국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에 5년간 25억달러(약 3조6700억원)를 들여 연구 센터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초기 단계 임상 연구와 AI 연구도 중국에서 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중국 매출 비율은 12%로 다른 제약사보다 높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제약 회사 사노피도 지난해 12월 중국에 10억유로(약 1조5900억원)를 투자해 당뇨병 치료용 인슐린 생산 기지를 세운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대기업 CEO들이 중국을 추켜세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중국 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지만, 거대한 시장 규모와 첨단 기술 발전으로 창출되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CDF에 참석차 방중한 이재용 회장은 지난 22일 레이쥔 샤오미 회장과 샤오미 전기차 공장을 찾았다. 이들은 모바일과 전기차 사업 협업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국가(지역)는 중국이었다. 64조9275억원을 올렸는데, 이는 둘째 지역인 미주(61조3533억원)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중국도 외자 투자 절실
중국도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리창 총리는 CDF에 참석한 글로벌 대기업 경영진 80여 명 앞에서 “중국은 더욱 개방적인 태도로 전 세계 기업인과 협력하길 원한다”고 했다.
◇中도 외국기업 투자 독려 나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미국과 달리) 관세 인하를 지지하면서 ‘세계화’를 고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매년 CDF 폐막 후 시진핑 주석이 기업인들을 만나는 것이 관례인데, 이 자리에서 어떤 새로운 투자 발표가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역시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 제재가 수년간 지속되면서 외국인 투자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의 중국 직접투자액(FDI)은 전년 대비 27.1% 줄었다. 중국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해부터 대외 개방 확대를 외치며 외국 기업 투자를 독려하고 나섰다. 리창 총리는 “중국은 외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충격 가능성에도 이미 준비했다”며 “필요할 경우 추가 부양책을 내놓아 중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