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국가유산재난 ‘심각’ 발령
하회마을·병산서원 인근 산불 확산
영덕·영양까지… 주왕산공원 위협
하동은 지리산 500m까지 초비상
화마가 남부 지역을 나흘째 덮친 가운데 25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대피 명령이 내려진 마을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 위쪽으로는 산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있는 안동에서는 전 시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안동 뉴스1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서 시작돼 남부 지역을 강타한 산불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운데 지리산국립공원과 안동 하회마을, 주왕산국립공원도 산불 위험에 직면했다. 경북 의성 산불로 천년고찰 고운사는 소실됐다. 의성 산불이 청송을 넘어 영덕·영양까지 확산하며 최대 고비를 맞게 됐다. 산림청은 전국적으로 산불이 잇따르자 25일 오후 4시를 기해 전국에 산불재난 국가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상향 발령했다. 국가유산청도 오후 5시 30분 국가유산 재난 위기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심각 단계는 관련 법률이 제정된 이후 처음이다.
산림청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경남 산청 산불이 하동으로 확산하고 전날 의성 산불이 안동까지 번지자 의성과 하동에 방어선을 집중 구축했다. 의성 산불은 야간까지 이어지고 이날 강풍이 불면서 급속도로 확산하며 피해 면적(잠정)이 축구장(0.7㏊) 2만 1600여개에 달하는 1만 5185ha까지 늘었다. 2022년 울진·삼척 산불(1만 6301㏊)에 이어 단일 산불 피해로는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정부는 의성 산불 피해가 전방위로 확대됨에 따라 헬기 77대를 투입하는 등 관계기관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오후 들어 초속 15m 이상의 강풍을 타고 산불이 퍼지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오후 3시 30분쯤 산불이 하회마을에서 직선으로 10㎞ 떨어진 안동시 풍천면까지 확산됐다. 확산 속도를 고려할 때 하회마을과 병산서원까지 산불이 도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안동시와 소방당국은 문화유산 주변에 물을 뿌려 산불 현장에서 날아온 불씨를 차단하고 진화 인력을 현장 배치해 불이 옮겨붙는 것에도 대비하고 있다.
지연제 등을 사용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오후 4시 50분쯤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자락에 있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가 불에 탔다. 신라 신문왕 1년(서기 681년) 의상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고운사는 경북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 중 하나다.
지난 24일 밤 산불이 번지고 있는 경북 의성의 야산 앞 도로 가로등 밑에서 한 어르신이 아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의성 AFP
우려했던 의성 산불은 청송을 넘어 영양과 영덕까지 확산되며 주왕산국립공원을 위협하는 상황이 현실화했다. 주왕산국립공원에서 4㎞ 정도 떨어진 청송군 파천면까지 퍼진 산불로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주왕산국립공원 관계자는 “다른 지역 사무소에 진화 차량과 장비 등의 지원을 요청한 상태”라고 전했다.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고속도로 차량 통행과 철도 운행이 중단됐다. 한국도로공사는 25일 오후 5시를 기해 서산영덕고속도로 서의성 나들목(IC)~영덕 IC 구간(94.6㎞) 양방향, 중앙고속도로 의성 IC~서안동 IC 구간(37.7㎞) 양방향을 통제했다. 코레일은 오후 3시 23분 중앙선 안동~의성 구간 열차 운행을 중단한 뒤 오후 5시를 기해 영주~경주 간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KTX 5대와 일반 열차 6개 운행이 중단됐다.
닷새째 이어진 산청 산불이 하동까지 번진 가운데 불길이 산청 시천면 일대 지리산국립공원 500m 지점까지 접근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지리산 천왕봉까지 9㎞ 지점으로 산림당국은 지연제 등을 뿌려 산불 확산에 대비하고 있다. 한때 국립공원과 400m 거리까지 불길이 접근했으나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국립공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산림당국은 이날 일출과 함께 헬기 32대와 인력 2122명, 장비 258대를 투입해 진화에 나섰으나 불이 고지대로 번지고 두꺼운 낙엽층과 쓰러진 나무 등으로 현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후에 초속 7~15m의 강한 바람이 예보돼 진화 작업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나흘째 이어진 울주 산불은 양산 확산 위험에도 진화율 98%를 기록하며 이날 주불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언양 인근에서 또 다른 산불이 발생해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돌변했다. 오후 2시 산불 1단계가 발령된 언양 산불 현장은 2013년 대형 산불로 280㏊의 피해가 발생한 지역이다. 울주 대운산으로 확산 가능성이 제기된 양산시는 산림청과 합동으로 대운산 자연휴양림 위쪽 임도를 주요 지점으로 삼아 산불 차단을 위한 저지선 구축에 나섰다. 대운산 양산 방면에는 240㏊ 규모 자연휴양림과 1만㎡ 규모 유아 숲 체험시설이 포함된 25㏊의 생태숲, 양·한방 서비스 체험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2일 발생한 경남 김해 산불은 66시간 만인 이날 오전 9시 주불 진화가 완료됐다. 산림청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울주와 김해 산불을 잡고 진화력을 산청과 의성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오전에 진화 헬기와 인력·장비를 집중적으로 투입했으나 강풍 앞에 불길을 잡는 데 실패했다.
박승기·이창언·민경석·김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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