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 주변 <독자제공>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바람을 타고 안동, 청송 등으로 번지면서 국가유산 보호에 비상이 걸렸다. 안동에는 봉정사 대웅전 등 국보 5건과 보물 49건이 있다.
25일 오후 의성군의 ‘천년 고찰’ 고운사가 전소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불에 탈 위기에 놓였다. 소방 당국은 병산서원 등에 물을 뿌리며 방어에 나섰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국가유산 재난 위기 경보 중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했다. 심각 경보가 발령된 건 처음이다.
◇의성 ‘고운사’ 전소
산림 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50분쯤 의성군 단촌면의 사찰인 고운사에 산불이 덮쳐 완전히 불탔다. 승려 등 20여 명은 안동 서후면의 봉정사로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고운사 도륜 스님은 “(산불로) 전각이 남아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本寺)로 신라 신문왕 때인 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 학자인 최치원이 이곳에 머물며 가운루와 우화루 등 누각을 지었다. 고운사라는 이름도 최치원의 자(字)인 ‘고운(孤雲)’에서 딴 것이다. 보물인 석조여래좌상과 가운루 등 국가유산이 있다.
경북도는 전날 소방차를 동원해 고운사 주변에 물을 뿌렸지만 강풍을 타고 넘어온 산불을 막지는 못했다. 고운사의 보물 3점 중 석조여래좌상은 인근 안동청소년문화센터로 옮겨 화를 면했지만 연수전과 가운루는 전소됐다. 의성군에서는 지난 22일 안평면의 사찰인 운람사도 불에 탔다.
이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유명해진 안동 길안면의 만휴정도 불탔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위기
이날 오후 산불은 남풍을 타고 북진했다. 안동시 풍천면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에서도 소방 당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지만 언제 불길이 덮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불은 이날 오후 10시 기준 하회마을에서 8km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
경북소방본부는 소방헬기를 동원해 낙동강 물을 퍼서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에 뿌렸다. 소방차도 하회마을에 5대, 병산서원에 4대 배치했다. 누구나 불을 끌 수 있게 마을 안에 있는 소화전 30곳도 전부 열어놨다.
안동시는 오후 5시쯤 하회마을 주민들에게 ‘저우리 마을로 대피 바란다’는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 소방 당국은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주변에 화재 지연제 등을 뿌렸다. 하회마을 주민들도 나서서 초가 지붕에 물을 뿌렸다. 주민 류상익(47)씨는 “언제 불길이 닥칠지 몰라 손발이 다 떨린다”고 했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豊山 柳氏)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둘러싸고 흐른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마을 곳곳에 사당, 정자 등 문화유산이 있다.
풍산 류씨의 종가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생가인 충효당은 보물로 지정됐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건축물도 9곳 있다. 199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국빈 방문해 주목을 받았고, 20년 후인 201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도 방문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가 보물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안동 봉정사도 위험한 상황이다. 국보 극락전과 대웅전 등을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날 청송군에도 산불이 번지면서 주왕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대전사도 위태롭게 됐다. 대전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보물 보광전 등 문화유산이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