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트럼프 앞에서 31조 투자 약속
환영하는 트럼프 "위대한 기업 현대 영광"
향후 정부 간 협상서 주요 협상 카드로 활용
상호관세 부과 가능성 여전해…트럼프 말 뒤집나
美 생산 확대로 국내 생산 기반 약화도 우려
24일(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백악관에서 미국 직접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 미국에 31조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의 수입 자동차 관세 발표를 일주일 앞두고 선물 보따리를 건넨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관세를 낼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화답하고 나섰지만, 업계에선 전례를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입장을 180도 바꿀 수 있다며 조심스럽게 후속 조치를 주시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2028년까지 4년간 미국 내 자동차와 부품, 물류, 철강, 미래 산업 등에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구체적인 대미 투자 계획을 밝힌 국내 기업은 현대차가 처음이다. 정 회장은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등 완성차 생산 확대 △현대제철 자동차 강판 생산용 전기로 신설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에너지 협력 등을 주요 사업 내용으로 제시했다.
이런 발표에 트럼프 대통령은 "진정 위대한 기업인 현대와 함께하게 돼 큰 영광"이라며 현대차를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국내 제조업 일자리 확대와 철강 자급력 강화, 원자력 기술 발전 등을 주장했는데, 현대차가 이런 요구에 딱 맞는 투자 계획을 밝히자 반색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철강을 만들고 자동차를 생산할 것"이라며 "그 결과 그들은 미국에서 관세를 낼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에 대해 업계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관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언급이 다음달 2일로 예고된 상호관세 면제의 의미인지는 좀 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발언 전문을 보면 미국 내 생산 차량에 대해 관세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커 보인다"며 "어떻게 보면 원론적 수준 발언일 수 있다"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실제로 자동차 등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는 기업에 따라 차등 부과되지 않고 국가 별로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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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다만 현대차의 이번 투자 결정이 향후 한미 정부 간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로 예고된 상호관세에 대한 협상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나는 많은 국가에 면제를 줄 수도 있다"며 "그것은 상호적이지만 우리는 상대국의 관세보다 더 친절(nice)할 수 있다"고 협상 여지를 열어뒀다. 상호관세에 대해 "예외는 없다"고 선을 그었던 상황와 비교하면 다소 기류가 변한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통화에서 "현대차가 미국 내에서 소재부터 중간재, 완성품까지 밸류체인을 통째로 미국에 두겠다면서 확실한 친화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라며 "향후 정부 간 관세 협상 과정에서 현대차의 투자가 우리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 카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일각에선 한국이 미국의 조선 사업과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프로젝트 등에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한 만큼 향후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율이 완화될 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섞인 관측도 나온다.
만약 상호관세가 부과되더라도 일본이나 EU 등 경쟁국에 비해 세율이 감경된다면, 가격 경쟁력에서 우리 기업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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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긴장의 끈을 놓치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차의 통 큰 투자로 우리 정부가 이전보다는 우호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됐지만 고율의 상호관세 부과 위험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사례가 있기 때문에 마냥 긍정적인 결론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앞서 선물 보따리를 풀었던 일본이 트럼프 정부로부터 뚜렷한 응답을 받지 못하는 점 등을 지적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트럼프에 미국 US스틸 인수를 약속했지만 큰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일본 자동차 업계가 지난 70년간 미국에 500억 달러(약 73조원) 이상 투자했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지만, 관세 관련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무역협회 한아름 수석연구원은 통화에서 "미국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을 콕 집어 불공정 거래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인식을 밝힌 바 있다"며 "미국 내 자동차 업계의 불만 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관세를 피할 수 있다고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흑자를 보고 있던 호주에 대해 관세를 유예해 줄 것처럼 했다가 입장을 뒤집은 적이 있다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협회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국내 자동차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서 향후 통상 환경에 대응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현대차의 미국 현지 생산 확대로 국내 생산 위축 우려도 상존한다. 그동안 대미 수출에 의존했던 국내 업계의 미국 현지 생산이 본격화할 경우 그에 따른 국내 생산량 감소는 불가피하다. 이에 따른 노조 반발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 원장은 "과거와 같이 국가와 기업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는 흐름이 앞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라며 "핵심 제품이나 주요 R&D 기반은 국내에 남겨두면서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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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석호 기자 seokho7@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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