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도 아이콘’ 된 파리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박혜정 인터뷰
3년뒤 올림픽 준비는 이미 시작… 매일 운동일지 쓰며 기본훈련 집중
리원원-리옌 中아성 견고하지만… 롤모델 장미란처럼 ‘金’으로 바꿀것2024 파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박혜정이 SKT타워 지하 1층 체육관에서 한 손으로 오른쪽 볼에 하트 모양을 만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박혜정은 자신의 ‘롤 모델’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4년 전 은메달을 금빛으로 바꿨던 것처럼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2028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는 메달 색을 바꿔 올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만난 ‘역도 요정’ 박혜정(22)의 목소리에서는 덤덤하면서도 단단한 자신감이 흘렀다.
박혜정은 지난해 파리 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81kg 초과급) 경기에서 인상 131kg, 용상 168kg, 합계 299kg의 한국 신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망주를 넘어 한국 역도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그는 “다음 목표는 당연히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힘줘 말했다.
파리 올림픽 이후 많은 게 바뀌었다. 예전에 비해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늘었고, 응원의 목소리도 훨씬 커졌다. 박혜정은 “지난해 12월 가족들과 일본 여행을 갔는데 마스크를 써도 알아보는 한국 여행객들이 있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올림픽 이듬해인 올해는 큰 대회가 없다. 하지만 3년 뒤 LA 올림픽을 향한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2월 중순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박혜정은 서서히 몸을 예열하고 있다. 기본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는 박혜정은 “용상에 비해 약한 인상 훈련 비중을 높였고, 만성적인 무릎 통증과 1월 겪었던 허리 부상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취미를 묻는 질문에 잠시 머뭇하던 박혜정은 “꽃꽂이를 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나지 않는다”며 “쉬는 날에는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거나 수액을 맞는다. 요즘은 그냥 잠자기가 취미인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올림픽 은메달을 따며 스타 선수가 됐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기본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는 요즘도 매일 운동 일지를 쓴다. 일지에는 당일 훈련의 루틴과 중량, 횟수 등을 기록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들였던 습관이다. 운동이 잘되지 않는 날에는 퍼포먼스가 좋았던 날의 기록을 참고해 효과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평소 훈련 내용은 꼼꼼하게 기록하지만 정작 경기에 나가서는 중량에 연연하지 않는다. 박혜정은 “중량은 감독, 코치진에 전적으로 맡긴다”며 “나는 무게를 들어 올리는 그 순간에만 집중한다”고 말했다.
박혜정이 세계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견고한 중국의 아성을 깨야 한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중국 역도 최고 스타 리원원(25)은 합계 309kg을 들어 올려 박혜정(합계 299kg)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리원원은 현재 여자 최중량급 합계 세계 최고 기록(335kg) 보유자다. 리원원이 부상으로 빠졌던 지난해 12월 열렸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중국의 신예 리옌(21)이 인상, 용상, 합계 전 부문에서 박혜정을 앞서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박혜정의 각오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기사 댓글을 보면 ‘박혜정은 2등만 하다가 끝날 것 같다’는 얘기도 많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나도 처음에는 어렵겠다고 느꼈는데 막상 경기에서 만나보니 다음엔 해볼 만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
박혜정은 ‘롤 모델’이자 역도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42)의 뒤를 따르고자 한다. 장 차관 역시 첫 올림픽 출전이었던 2004년 아테네 대회 여자 역도 최중량급에서는 탕궁훙(46)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4년 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중국 선수를 꺾고 메달 색을 금빛으로 바꿨다.
박혜정은 중학교 3학년 때인 2019년에 합계 255kg을 들어 올리며 장 차관의 고등학교 2학년 기록(합계 235kg)을 넘어섰다. 성인 무대에 데뷔한 후에도 출중한 기량으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현재 SK텔레콤의 후원을 받고 있는 박혜정은 자신을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나도 똑같이 다음 올림픽에서는 메달 색을 바꿔 오고 싶은 욕심이 가장 크다”며 “오래 운동하면서 좋은 경기 계속 보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