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사법 리스크 돌파…허위사실 공표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 선고
위증교사·대장동·대북 송금 등 4건은 여전히 ‘불씨’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또 기사회생했다. 2018년 경기지사 선거 때에 이어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에서 불거진 '선거용 거짓말' 혐의에서도 당선무효형 판단이 나온 원심이 깨졌다. 대장동·백현동 개발 의혹과 관련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3월26일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향후 10년간 선거에 나설 수 없는 형량을 선고한 1심 판결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이 대표는 7년 전에는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을 거짓 해명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경기지사직을 잃을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2020년 대법원은 대법관들의 팽팽한 견해차 속에 가까스로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을 강조한 당시 판례가 이번에도 이 대표를 살린 셈이다.
이 대표로서는 탄핵 정국에서 최대 위기인 사법 리스크 부담감을 일부 떨쳐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특히 변수였다. 만일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4월에 결정돼 조기 대통령선거가 현실화하면, 이 대표의 사법 시계에 따라 대권 판도가 출렁일 수 있다. 현행법상 대법원 일정은 6월26일까지 마무리돼야 하는 만큼 대선 국면과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항소심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대법원 판단과 일정은 더 이상 큰 변수가 아니게 됐다. 다만 사법 리스크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다.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위증교사 사건이 남아있다. 지난해 1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 대표를 향해 "위증한 사람은 죄를 인정받았는데 위증을 교사한 이 대표는 법망을 피했다"는 법조계 일각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26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동료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위증죄는 성립했는데 위증교사는 성립 안 해?
서울고법 형사6-2부(재판장 최은정, 이예슬·정재오 고법판사)는 3월26일 오후 2시부터 1시간30여 분간 선고기일을 진행한 끝에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상 중형인 징역 2년을 선고해 달라는 검찰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대표는 2021년 대선후보 시절 네 차례 방송 인터뷰에서 대장동 개발 실무자인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며 허위사실을 공표한 의혹을 받고 있다. 대장동이 개발된 성남시장 재직 당시에는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시장 시절 해외출장에서 김 전 처장과 골프를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12월 제시한 골프 동행 사진에 대해서는 '조작설'을 꺼냈다. 경기지사 당선 뒤 다른 사건으로 기소된 후에야 김 전 처장을 알게 됐다고도 했다. 아울러 민간업자에게 혜택이 돌아간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용도변경 배경과 관련해서는 2021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박근혜 정부 국토교통부의 압박을 받았다"고 말한 혐의도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공소사실을 모두 물리쳤다. 사람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개인의 주관적 인식이나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에 허위사실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표에게 고의성이 없었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의견 표명을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1심 재판부가 "이 대표가 당선될 목적으로, 대선 당시 대장동 등 관련된 의혹과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판단한 대목과 정면으로 엇갈리는 지점이다.
김 전 처장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개인적 인식에 관한 것을 짧고 명확하게 말한 것으로 김 전 처장과의 교유행위를 부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연장선에 있는 '골프 발언' '사진 조작설'도 이 대표의 입장에 힘을 보탰다. 재판부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의 공개 사진) 원본은 10명이 찍은 것인데 골프를 쳤다는 증거를 뒷받침할 자료로 볼 수 없다"며 "원본 중 일부 떼내 보여줬기 때문에 조작됐다"고 했다. 이와 관련한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는 "사진이 조작돼 김 전 처장과 함께 골프를 친 사진이 아니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다른 합리적 해석 가능성을 배제한 채 공소사실에 부합하게만 해석하면 정치적 표현 자유와 선거운동 자유의 헌법적 의의 등 중요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사법 대원칙도 꺼냈다. "의심될 때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2015년 해외출장 중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노란 원)과 함께 찍은 사진 ⓒyoutube 화면캡처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설명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youtube 화면캡처
2021년 12월 한 방송 인터뷰에서 김 전 처장과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는 이 대표 모습 ⓒyoutube 화면캡처
'10년간 피선거권 박탈' 원심 파기한 2심 재판부
백현동과 관련한 공소사실 역시 결과는 같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00여 쪽의 판결문에서 과거 이 대표를 살린 판례를 인용했다. 2020년 7월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전원 14명이 참여한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대법원은 당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이 나온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2018년 선거)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토론은 제한된 시간 내 즉흥적으로 이뤄져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표현의 자유의 우월적 지위, 형벌법규 해석의 원칙에 비춰 어느 범주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 원칙적으로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이 행하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에 이를 받아들인 항소심 재판부는 "백현동 발언은 전체적으로 의견표명에 해당한다"며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성남시는 한국식품연구원의 지속적인 요청을 받고 있었고 정부가 법에 따라 신속하게 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한 상황"이라며 용도변경은 지자체장으로서 정부에 협조한 것이라는 의미다. "설령 검사의 주장대로 해석할 수 있다 해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발언을 다른 합리적 해석의 여지를 배제한 채 공소사실로만 해석하는 건 대법원 판례에 반한다"고 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장동 50억 클럽' 중 한 명인 권순일 전 대법관이 유·무죄 의견이 5대5로 갈린 상황에서 무죄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도 다수인 무죄 의견을 내면서 이 대표를 살리는 결정적 판례로 남게 됐다. 지난해 11월 이 대표에게 중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가 이 대법원 판례를 받아들이지 않은 점과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백현동 로비스트'와의 의혹도 항소심 재판부가 덜어줬다.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와 관련해서다. 김 전 대표는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받았고, 결국 최고 형량인 징역 5년의 유죄를 확정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편 확정판결에 의하면 (김 전 대표가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과 친분을 맺고 청탁 및 알선 대가를 수수한 사정, 정진상에게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을 청탁하고 이러한 청탁을 했다고 (민간 개발업자인) 정바울에게 알린 게 증거로 인정됐다"면서도 "피고인(이 대표)의 개입 여부는 판결에서 사실로 인정된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판단은 원심과 정면 배치되며 눈길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한성진, 주심 이학인, 배석 박명)는 지난해 11월15일 1심에서 이 대표가 당선될 목적이라는 고의성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판단했다. 국정감사장에서 '패널'을 준비한 사실 등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뒷받침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을 보면, 당선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경우 기본형은 징역 10개월 이하 혹은 벌금 200만~800만원형이다. 죄질이 무거우면 징역 8월~2년 혹은 벌금 500만~1000만원형을 받을 수 있다. 당시 원심은 이 대표의 죄질을 중하게 본 것이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선거 과정상 허위사실 공표 행위로 인한 민의 왜곡, 선거제도 기능과 대의민주주의 본질 훼손 염려, 이 대표가 다른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도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 등의 양형 사유를 나열했다. 특히 고(故) 김문기 전 처장이 블로그 등도 관리하며 이 대표의 의혹을 직접 나서 해명한 사실 등도 담겼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모를 수 없었다는 취지다. 김 전 처장은 민간업자 추가 이익금 배당 등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관여한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 그는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탄 2021년 12월21일 사망했다. 그의 직속 상사였던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의 사망 11일 만이다.
'위증교사' 항소심, 아직 본격적인 재판 시작 안 돼
이 대표로서는 이번 항소심 결과로 최대 위기를 떨쳐낸 모습이다. 그럼에도 리스크는 남아있다. ①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②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 송금 ③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 사건과 관련해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④위증교사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2023년 10월 진행된 ①번 사건은 여러 사건이 병합됐고 쟁점이 많아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②번과 ③번 사건은 지난해에야 기소된 건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게 ④번 사건이다. 이 대표가 2018년 12월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 김진성씨에게 '2002년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 재판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거짓 증언을 해달라고 요구한 사건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건이 다섯 가지 사법 리스크 중 이 대표에게 가장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김진성씨가 이 대표의 부탁으로 허위 증언했다고 자백한 것이 그 근거였다.
실제 1심 재판부는 사실관계를 인정한 김진성씨에게 위증 혐의가 있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대표에게는 고의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 의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당시 "위증교사는 엄격한 증명이 요구된다"며 "이 대표가 명시적으로 거짓 증언을 요청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기억나는 대로 법정에서 진술해 달라"는 이 대표의 발언만 보면 위증교사로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그러나 "'이러지 않았었느냐'고 운을 떼며 '기억나는 대로 말하라'는 건 위증교사의 고전적 수법"이라고 지적한다. 김씨가 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위증한 이유도 결국 이 대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항소심 절차는 4월1일 2차 공판준비기일로 이어진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을 앞두고 심리 계획 등을 정하는 단계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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