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T 감사 결과
세종에 위치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연구원 창업보육센터에 공모 절차 없이 입주해 6년간 무상으로 사무공간을 사용한 은퇴 과학자들이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특별한 기여가 없음에도 직무발명 기여도에서 후배 연구자보다 높은 점수를 배분받은 '보직자' 선배들도 있었다.
28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최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감사위원회(이하 감사위)는 산하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해 최근 이같은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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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에도 없는 '대표발명자', 알고 보니 본부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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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규정에도 없는 '대표발명자' 등의 직책을 만들어 '실무발명자'와 구분한 뒤, 대표발명자에게 다른 공동발명자보다 높은 기여율을 산정한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감사위는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에서 2022~2023년 등록된 특허와 관련된 직무발명 관리 실태를 점검한 결과, 규정에도 나와있지 않은 '대표발명자' 등의 직책을 만들어 다른 이들보다 높은 기여율을 배분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출연연은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라 소속 연구자가 특허 등 직무발명을 했을 경우 출연연 명의로 지식재산권을 출원하고, 특허 종류에 따른 기여율을 적용해 업적평가 점수에 반영한다. 발명자가 다수인 경우엔 전체 발명자의 동의를 받아 발명자 기여율의 합이 100%가 되도록 해 발명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하지만 화학연의 경우 내부 규정에도 없는 '대표발명자' 등의 직책을 만들어 '실무발명자'와 구분한 뒤, 대표발명자에게 다른 공동발명자보다 높은 기여율을 산정한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 대표발명자들은 기관 내에서 본부장, 단장 등 보직을 맡은 이들이었다.
감사위는 "회의 참석, 특허명세서 검토 보완, 특허 기술 설계 및 검토 등 사유만 있을 뿐 발명자 요건에 해당하는 직무발명 과정에 참여했다고 확인할 수 없는 구체적 문서나 증거가 없음에도 공동발명자에 상응하는 기여율을 산정했다"고 했다.
감사 문건에 따르면 대표발명자로 등록된 책임연구원 A씨는 당시 직책이 본부장으로, 실무발명자와 같은 23%의 기여율을 받았다. 다만 A씨는 실무발명자와 달리 연구개발 계획 설계나 연구 결과 및 응용 결과 분석 등 발명의 '핵심'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또 다른 책임연구원 B씨는 '단장' 직책으로, 다른 실무발명자보다 10~20% 높은 기여율이 B씨에게 책정됐다. 정작 전구체 설계부터 성능 확인까지 책임진 연구원은 B씨보다 낮은 기여율을 인정받았다.
2022년, 2023년 화학연 보직자 그룹이 대표발명자로서 배분받은 직무발명 기여율은 이들이 실무발명자로서 기여율을 받았을 때보다 각각 1.7배, 1.9배 높았다.
화학연은 이에 대해 "경험칙상 발명의 완성에 중심적인 기여를 한 연구자가 보직자일 개연성이 높다"며 의도적으로 보직자에게 대표발명자라는 자격을 부여해 특허 기여율을 높게 배분한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감사위는 "구체적인 문서나 증거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소속 직원의 성과평가 및 직무발명 보상의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개선하라"고 화학연에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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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연구원 사무공간·시설 '무상' 사용한 은퇴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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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 전경 /사진=머니투데이
한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원내 창업보육 시설에 은퇴 연구자로 구성된 조합을 공모 절차 없이 입주시키고, 무상으로 시설을 사용하게 한 사실이 드러나 감사위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생명연은 바이오 분야 신기술 예비 창업기업이나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창업보육 시설 'BVC(바이오벤처센터)'를 운영 중이다. 공개모집을 통해 입주 희망 기업을 받으며 기술실용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입주 계약을 체결한다. 입주 기업은 입주보증금, 시설관리유지비 및 개별 사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생명연은 2015년 입주기업 공개모집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채 생명연 은퇴 연구자로 구성된 'C 조합'을 창업보육 시설에 3년간 입주시킨 사실이 최근 NST 감사 결과 확인됐다. 나아가 입주기업이 부담해야하는 비용도 무상으로 지원했다. C 조합은 입주부담금 없이 BVC에 입주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생명연의 사무공간 및 시설 등을 무상으로 사용한 셈이다.
3년 후인 2018년 C 조합은 "자립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며 또다시 무상 지원 기간을 연장해달라 요청했고, 생명연이 이를 받아들이며 무상 지원 기간이 늘었다. C 조합이 BVC에 입주한 기간 다른 입주기업은 매월 입주부담금을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연은 이런 감사 결과에 대해 "연구원이 입주부담금을 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으나 C 조합이 계속해 무상입주를 희망했고, 2022년 8월 최종 퇴거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위는 연구원 창업기업이나 연구소기업이 아닌 '조합'이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 센터에 입주한 점, 규정에도 입주부담금 예외 조항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경고 조치를 내렸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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