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우주항공청 본부장이 지난해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개청 100일 기념 우주항공청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미국 국적의 한국 우주항공청(이하 우주청·KASA) 주요 보직자들이 우주청에서의 활동 내역을 미국 정부에 상세 보고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우주청은 "기밀 유출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외국 국적자가 국가 비밀을 열람할 때 심사위원회의 인가를 받도록 했지만, 지금까지 심사위원회가 열린 적은 없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 주요 관계자의 관심 사항이 공개적으로 노출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31일 우주청은 미국 국적의 보직자가 미국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에 따라 미국 정부에 활동 내역을 정기 보고하는 건에 대해 "기밀 사항이 포함될 여지가 없다"면서도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제출 내용을 사전 검토했다"고 밝혔다.
앞서 우주청은 미국 시민권자인 존리 우주청 우주항공임무본부장과 김현대 항공혁신부문장이 FARA에 외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등록된 사실이 확인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FARA는 미국인이 외국 정부에서 근무하는 동안 이들이 미국 법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지 미국 정부가 확인할 수 있도록 활동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등록자는 6개월마다 미국과 관련된 관계자와의 접촉 날짜, 접촉 방법, 접촉 내용 등을 등록해야 한다. 등록한 정보는 FARA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된다. 최근 리 본부장과 김 부문장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 보잉사 등 미국 주요 항공우주계 관계자와 만난 내역이 FARA를 통해 샅샅이 공개되며 다시금 우주청의 '보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우주청 관계자는 "FARA는 외국 정부를 대리하는 모든 미국인이 준수하는 법"이라면서도 "제출 양식에도 만남의 방식, 목적만 간단히 기재하는 만큼 기밀 내용이 들어갈 수 없다"고 기밀 유출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자국 기밀이 유출되는 것을 우려해 미국 관계자와의 만남을 단속하는 게 FARA 법의 취지인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한국 입장에선) 기밀 정보를 FARA에 기재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했다. 더불어 "지난 10월 세칙을 제정해 서류 제출 전 '법률 자문' 형식으로 내부 검토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리 본부장과 김 부문장이 올해 초 FARA에 서류를 제출하기 전 우주청이 자체적으로 문제가 될 사항이 있는지 검토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지난해 12월엔 '우주항공청 보안업무 시행세칙'이 제정됐다. 규정에 따라 외국인 또는 복수국적자 직원이 비밀을 열람 또는 취급하고자 할 때는 우주청 차장을 위원장으로 한 보안심사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우주청 관계자에 따르면 세칙 시행 이후 심사위원회가 개최된 적은 없다. 아직 외국인 국적의 직원이 비밀을 열람한 사례가 없다는 의미다. 만일에 하나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도 국가 비밀이 유출될 경우 처벌은 '비밀엄수의 의무' 위반으로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이뤄진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우주 R&D(연구·개발) 정책 총책임자의 '일거수일투족'이 외국 정부에 의해 낱낱이 공개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표면적으로 기밀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우주 R&D의 주요 관심사나 정책 흐름이 외부에 노출되는 셈"이라며 "우주 R&D는 국가 간 '전략 경쟁'인 만큼 우주청이 직원 보안 교육은 물론 자체 규정도 철저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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