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남극과 환경 비슷한 폐광 활용해
로버, 무선송전기술 등 탐사기술 실증
지난 28일 태백의 옛 함태광업소 폐갱도 안에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선보인 달 탐사 로버(무인탐사기) 3대.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난 28일 강원도 태백시 소재 옛 함태광업소 폐갱도 안, SF 영화 속에서 화성을 누비던 ‘로버(무인탐사기)’ 3대가 나란히 달렸다. 360도 회전하는 바퀴를 이용해 폐광 내 굴곡진 경사를 넘나들고 구석에서도 어려움 없이 빠져나왔다. 로버 한 대가 앞쪽 바닥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레이저를 쏘자 옆쪽에 놓인 모니터에는 바닥 토양에 있는 원소들의 종류와 비율이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작업자가 버튼을 누르자 다른 로버에서 엄지손톱만 한 삽이 나왔다. 울퉁불퉁한 바닥을 헤치고 나아가 앞쪽에 놓인 모래를 살포시 뜨더니 로버 내부의 보관함에 담았다. 모래의 양은 1g. 이 탐사기들은 태백의 폐광에서 무수한 시험을 거친 뒤 38만km 떨어진 달에 가서 똑같이 모래 1g을 떠올 예정이다. 그 모래 안에 인류가 사용할 미래 에너지원이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은 이날 ‘폐광 내 달 현지자원 실증 시연회’를 열고 달 현지자원 개발 기술을 보여줬다. 평균 해발고도가 900m인 강원도 태백시는 국내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도시다. 한국에서 우주와 가장 가까운 도시인 셈이다. 앞으로 이곳은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우주자원 탐사 기술의 테스트베드로 변신한다.
폐광 내부 환경은 달의 남극과 비슷하다. 달 남극의 일부 분화구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고 기온이 매우 낮다. 깊은 분화구가 많아서 지형이 험하고, 미세먼지가 심해 시야 확보도 어렵다. 달에 보내기 전 장비 성능을 시험할 장소로 폐광이 낙점된 이유다. 이에 지질연은 지난 2월 태백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앞으로 폐광에서 우주 자원 탐사 기술을 연구할 계획이다. 폐광에서 우주 탐사 기술을 실증하는 건 이번이 세계 최초다.
달 표면에는 100만t 이상의 헬륨-3, 15종 이상의 희귀금속 등이 묻혀 있다. 경제적 가치는 약 560경원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헬륨-3 1g은 석탄 40kg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달 현지자원, 더 나아가 우주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이미 다양한 국가와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미국은 2030년 이전에 달에 우주인이 거주할 수 있는 기지를 세울 예정이며, 중국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탐사선 창어 6호를 착륙시켰다. 창어 6호는 달 뒷면 토양 1.94kg을 가지고 귀환하기도 했다.
김경자 지질연 우주자원개발센터장은 “세계적인 자원 전쟁에 끼어들려면 한국이 자체적인 우주자원 개발을 해아 하고, 여러 기관이 힘을 합쳐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달 탐사에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달 표면을 직접 돌아다닐 로버,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소형 원자로, 로버에 에너지를 전달할 무선전력전송 기술 등 개별 연구자나 연구기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를 위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28개 국내외 기관이 힘을 합친다. 이들은 K-달현지자원개발단을 만들고 대규모 연구 과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가 대규모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글로벌TOP 전략연구단’ 공모에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달 현지 자원 개발 개념도. 로버, 무선송진시스템, 초저궤도 위성 등이 함께 달 표면에 있는 자원을 탐사한다.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번 시연회에서는 여러 기관에서 개발한 장비들이 공개됐다. 한국전기연구원이 개발한 무선송전 시스템은 레이저를 이용해 전선 없이도 1km 떨어진 곳까지 50%의 효율로 전력을 보낼 수 있다. 방효충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초저궤도 위성 큐브샛은 달 표면에서 10~50km 떨어진 저궤도를 돌면서 달 표면의 자원을 자세하게 살핀다.
이러한 장비들은 앞으로 태백 폐광에서 극한 환경을 경험하며 완성도를 높여 나갈 예정이다. 지질연은 자체 개발한 진공 체임버 등을 이용해 폐광 내부를 달 극지 환경과 더욱 비슷하게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다. 태백시는 지질연과 협력해 올해 상반기부터 여러 장비를 한곳에서 실증할 수 있는 우주자원융합실증단지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평구 지질연 원장은 “1960년대 태백에서 수많은 광부들이 캐낸 석탄이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다”며 “미래 세대가 사용할 에너지원 탐사가 마찬가지로 태백에서 시작돼 더 뜻깊다”는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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