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당국 “산불끄려면 임도 확충 불가피”
환경단체들 “관리 안된 임도는 산사태 우려 키워”
경북 의성군 괴산리에서 지난 22일 성묘객 실화로 발생한 산불이 할퀴고 간 상처가 발화지점 일대 야산에 검게 퍼져 있다. 문재원 기자
최근 영남지역에서 발생한 대형산불 관련 진화장비나 인력이 산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임도’를 개설하는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임도 개설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남 산청 지리산 산불 현장에서는 험준한 산세 속에서 진입로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고, 울산 울주군에서 발생한 2건의 산불은 임도 여부가 진화 시간을 갈랐다는 것이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임도가 산사태 위험을 키운다며 중단을 요구해 왔던 터라 향후 양측간 공방이 예상된다.
31일 ‘2024년 산림임업통계연보’를 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의 산림에 설치된 임도는 총 2만584.7㎞다. 산림당국은 임도를 꾸준히 확충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평균 745㎞ 가량을 늘렸다. 2013년과 비교하면 임도 길이는 7453.5㎞가 증가했다.
2023년 경남 합천에서 산불이 난 뒤 고성능산불진화차가 야간에 임도를 통해 산으로 진입, 화재 진압에 나서고 있다. 산림청 제공
국내 산림면적 1㏊당 임도 길이를 나타내는 임도밀도는 2023년 말 기준 4.1m/㏊다. 임도밀도는 임도시설 현황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지표가 된다. 산림청 자료를 보면 국내 임도밀도는 일본(24.1)의 6분의 1 수준이고, 미국(9.5)과 비교하면 절반에 못 미친다. 다른 주요국 임도밀도를 보면 오스트리아 50.5, 독일 54.0, 캐나다 11.3, 핀란드 5.8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이 수치만 보면 다른 국가에 비해 국내 임도 설치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임도 부족 문제는 이번 대형산불을 계기로 다시 논란이 됐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경남 산청 산불이 장기화된 이유의 하나로 진입로 문제를 지적했다. 경사가 급한 산지에 진입로가 없어 진화 인력과 장비 투입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울산 울주군에서는 2건의 산불이 비슷한 시기 발생했는데, 정상까지 임도가 개설된 언양읍 산불은 20시간 만에 꺼졌다. 반면 온양읍 산불은 6일 만에 진화됐는데, 상대적으로 험한 산세와 임도 부족이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임상섭 산림청장은 지난 30일 산청 산불 현장 브리핑에서 “해발 900m의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 산불현장에 접근할 임도가 없어 진화인력을 현장에 투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헬기 외 인력을 투입해 불을 끄기 위해서는 임도 개설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며 “장기적으로 헬기 구입과 임도 개설 등을 통해 산불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명피해를 일으킨 경북 예천군 진평리 산사태 시작지점의 임도. 임도 아래로 쓸려내려간 흙더미가 보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환경단체는 그동안 임도 확충이 산사태 위험을 키운다며 임도 신설에 반대해 왔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11월에도 매년 범정부적으로 시행하는 국가안전대전환 결과를 토대로 전국 725개 임도 유역 아래에 있는 1925가구의 민가가 산사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무분별하게 건설한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림청은 산사태를 비롯한 재해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신규 임도를 늘려가고 있다”며 신규 임도 건설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해외 주요국과의 임도 밀도 비교도 무의미하다는 게 환경단체 주장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평지에 가까운 산림이나 구릉성 산지가 많아 임도로 산사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국내 산지는 지형이 매우 험한 곳이 많아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윤미향 전 의원은 2023년 국회의 정부 예산 심사 과정에서 “임도 예산 확대는 산사태와 연관성 등에 대한 충분한 조사·연구 끝에 해야 한다”며 “검증되지 않은 해외 임도밀도 수치에 근거한 임도 확대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이다솜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임도 설치 자체를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재난 대비 시설로서 임도 필요성에는 일정 부분 공감한다”면서도 “산사태 등 위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임도를 개설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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