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vs빅테크 업계 갈등
美 정부 무역장벽 지목에
한미 통상문제 비화 우려
법안 장기 계류···"통과 어려워"
스마트폰 화면 위로 넷플릭스 로고가 표시된 가운데 주가 그래프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서울경제]
구글·넷플릭스 등 해외 빅테크와의 망 사용료 갈등이 한미 간 통상 마찰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통신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한국 측 무역장벽으로 ‘망 사용료 부과’를 문제 삼으면서 빅테크에 대한 국내 관련 규제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1일 통신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망 사용료를 무역장벽이라고 선언한 이상 우리 법 통과도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사안이 미국의 파워게임(힘싸움) 양상으로 가버린다면 30년이 지나도 망 사용료를 못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향후 입법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예단이 어렵다”며 “(탄핵 이슈로) 정부 조직들이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망 사용료는 SK브로드밴드·KT·LG유플러스 등 망 제공 사업자(ISP)와 구글·넷플릭스 등 콘텐츠 제공 사업자(CP) 간 오랜 갈등의 쟁점이다. 유튜브·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의 성장으로 망을 오가는 트래픽이 급증하자 ISP는 망 투자 비용을 ‘원인 제공자’인 CP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국내 망을 오가는 트래픽 비중은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기업에 비해 해외 빅테크가 압도적으로 크다. 특히 ISP 입장에서는 빅테크 한곳당 연간 수천억 원, 조(兆) 단위의 연매출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반면 CP는 ISP가 이미 이용자에게 통신료를 받고 있으며 망 사용료 부과가 인터넷상 모든 데이터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ISP 측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가 소송을 벌였다가 인터넷(IP)TV 제휴로 상호 합의하는 등 개별 사업자 간 협상 사례는 있지만 정부 차원의 망 사용료 규정은 아직 없다. 이번 22대를 포함해 국회에서 사업자 간 망 사용료 협상에 정부의 개입을 허용하는 ‘망 무임승차 방지법’이 발의돼왔지만 통상 마찰 우려 등으로 장기간 계류 중이다.
우리 정부가 아직 망 사용료 규제를 시행하지 않고 빅테크에게 부과하고 있지도 않은 만큼 미국이 주장하는 상호관세 원칙과는 무관한 사례라는 게 우리 정부 측 설명이지만, 일단 무역장벽으로 지목된 이상 국가 차원의 통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망 무임승차 방지법의 상임위원회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도 “외교적 문제로 안그래도 오래 계류돼온 법안”이라며 “미국의 과학기술 분야 민감국가 지정에 더해 국내에서는 대통령 탄핵 선고 이슈가 있기 때문에 해당 사안은 상임위 개최 등 대응이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망 사용료와 관련한 여러 국제적 논의 동향을 지켜봐야 한다”이라며 “우리 정부가 실질적으로 규제나 보이지 않는 장벽을 가동하는 게 없어서 국회 논의가 어떻게 영향 받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한편 1위 통신사 SK텔레콤의 이해관계는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자회사 SK브로드밴드가 망 사용료 갈등의 최전선에 있지만 SK그룹 차원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AI 사업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해 실리를 따져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SK텔레콤 역시 다음달 새로운 AI 에이전트(비서) 서비스 ‘에스터’를 북미 시장에 시범 출시하며 글로벌 AI 사업을 본격화한다.
미국은 망 사용료뿐 아니라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까지 무역장벽으로 거론하면서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한국의 규제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모습이다. 직접 언급은 없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인앱결제 제재안 역시 구글·애플에 대한 규제인 만큼 이번 사안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방통위는 2023년 10월 구글과 애플의 앱마켓(구글플레이·앱스토어) 수수료 정책이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한다며 총 680억 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판단을 내렸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해당 안건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과징금의 산출 근거가 되는 사업자 매출을 새로 산정하고 있다”고 했다.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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