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고서 결과 바탕으로 새 정책
탄핵 국면에 혼란…"정부에 큰 기대 없다"
전문가들 "인수합병·통폐합 절실"
편집자주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이례적인 구조적 침체에 빠졌다. 경기와 수급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던 사이클 산업이 중국발 공급 과잉과 환경 규제의 이중고에 발목 잡혀 있다. 정부와 업계 모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시아경제는 3회에 걸쳐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본다.
대규모 장치 산업인 국내 석유화학 분야가 업황 부진으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관련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과 탄핵 정국에 발목 잡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업계는 석화 업계 지원 방안의 초석이 될 컨설팅 결과 보고서를 주목하고 있다.
업계는 컨설팅 착수…내달 윤곽 나와
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화학산업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용역을 맡긴 '석화 산업 재편계획' 컨설팅 결과 보고서가 오는 7일 나온다. 협회와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은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내 과잉설비 규모를 판단하고, 향후 사업 재편과 과잉설비 우선순위를 검토할 예정이다. 보고서는 이달 중 정부에 제출돼 업계 지원의 기준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놨으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기업들의 반발로 명확한 정책이 나오지 못했다. 정부는 이번 BCG 보고서와 산업기술기획평가원의 연구개발(R&D) 지원 연구 결과를 반영해 올 상반기 내에 새 지원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BCG의 용역 보고서에 원료 경쟁력 제고와 과세 완화,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 실증시설 증설 등의 정책이 담길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납사 등 석유화학 원료의 무관세 기간 연장과 원료 선택권 확대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탄핵 정국·공정거래법, 구조조정 발목 잡아
다만 용역 결과 보고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4일) 직후인 탓에 업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대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고 결과가 나오더라도 한동안 정국이 혼란스러울 것"이라면서 "완전히 안정화되기 전까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석유화학 업체들에 대해 정부가 획기적인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업계에서 자발적으로 사업을 재편하거나 정유 회사에서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를 인수하는 등 움직임이 중요한 것이지, 정부가 압박해서 개선되는 건 한계가 있다"고 했다.
공정거래법도 걸림돌이다. 공정거래법상 특정 기업에 대한 지원이 시장 경쟁 제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재정 지원보다는 규제 완화, 제도 개선 수준에서 논의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살펴보면 직접적인 금융 지원보다는 설비 전환과 기술 투자 유도 수준에 그쳤다.
석유화학 기업 간 구조조정 논의 역시 공정거래법 탓에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공회전 중이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3장 제9조에 따르면 특정 거래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이 1위거나 시장지배적 사업자 요건(점유율 50% 이상)에 해당할 경우 기업 간 결합을 독과점 행위로 간주해 공정위의 시정 조치 대상이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적절히 공장 효율화를 위해 셧다운하기도 하는데, 몸집이 클수록 손해가 더 커져 현 상황에 대응하기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충남 서산에 위치한 한화토탈에너지스 대산공장 전경. 한화토탈에너지스 제공
전문가들 "NCC 기업 M&A 통폐합 절실"
석유화학업계는 지난해 12월 정부에 공정거래법을 완화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건의했다. 그러나 당시 주무 부처인 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과 주력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통폐합 대상으로는 국내 대표적인 NCC 운영 업체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여천NCC 등이 거론된다.
남장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M&A를 통해 대형화에 의한 규모의 경제 확보, 업체 수 감축 등을 통해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본질적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중국과 중동의 정유·석유화학 통합공장(COTC)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선 M&A 수준을 넘어 통폐합해야 한다"라며 "특히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이 기초 유분 등 겹치는 제품이 많은데, 이 제품들을 합하거나 없애고, 고급형 스페셜티 제품을 전략적으로 밀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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