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에서 호세프까지 세계 탄핵사에…尹,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름 올려
‘부패·기행’ 남미 지도자들 탄핵 심판대…‘워터게이트’ 닉슨은 자진사퇴
‘성추문’ 빌 클린턴, ‘탄핵 2회’ 트럼프는 구사일생…자리보전 정상들도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끝내 탄핵의 고배를 마셨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한국 국가수반이 파면된 두 번째 역사가 기록됐다. 대통령 탄핵이 '정치적 이벤트'로 여겨지는 중남미 일부 국가의 개별 기록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국가별 탄핵 절차, 사유 등이 천차만별이란 점을 감안해도 세계 탄핵 역사에 한국 정상이 두 명이나 기록된 점을 심각하게 인식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상급 인사들에 대한 탄핵소추가 잦아진 데 대한 정치적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4월4일 헌법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탄핵심판이 인용돼 파면의 길로 갔다. 헌법재판소는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라 5가지 탄핵사유를 모두 인정하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밝혔다.
이날 재판관들이 인정한 탄핵사유는 △12·3 비상계엄 선포가 적법했는지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국회에 계엄군과 경찰을 투입한 행위가 적법했는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한 것이 적법한지 △사법부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구금 지시가 있었는지 등이다.
한국에서 탄핵을 통해 첫 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다. 2017년 당시에도 헌법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려졌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공무원 임용권 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국정개입 허용 및 권한 남용 △뇌물죄 혐의 등 5가지 사유를 심리했다. 이 가운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허용 및 권한 남용 부분에 대해 "위헌·위법의 정도가 중대하다"라며 탄핵 사유로 인정했다.
이에 앞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탄핵소추' 기록을 만든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총선 관련 발언의 선거법 위반 논란을 계기로 탄핵 심판대에 올랐다. 2004년 당시 한나라당 주도로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을 파면시킬 중대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연합뉴스
취임 6개월, 2년 만에 쫓겨나는 남미 대통령들
세계 각국에선 또 누가 탄핵의 강을 건넜을까. 상대적으로 '민주주의 성숙도'가 낮다는 평가가 나오는 중남미 국가들에선 대통령 탄핵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로 대통령과 측근들의 부패와 비리, 스캔들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불안 등을 이유로 대통령 파면 사례가 잇따랐다.
페루는 역대 대통령 4명에 대해 7건의 탄핵소추가 있었다. 그 중 3명이 물러났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21년 7월 취임한 페드로 카스티요 전 페루 대통령이다. 카스티요 전 대통려은 취임 4개월 만에 정치적 위기를 맞고 2022년 탄핵을 당해 직에서 물러났다. 탄핵 사유는 대통령과 측근들의 불법적인 영향력 행사 의혹 등에 따른 '도덕적 무능'이 꼽혔다.
이에 앞서 2020년에는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마르틴 비스카라 전 대통령이 탄핵됐다. 2018년에는 취임한 지 약 2년을 넘긴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은 탄핵 표결을 하루 앞두고 사임했다.
일본 이민자 출신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전 대통령은 탄핵 절차 도중 사퇴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00년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 절차가 시작되자 일본 방문 중에 '팩스 사임서'를 제출했다. 페루에서 이 같은 대통령 탄핵의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 배경엔 정치권에서 만연한 부패와 비교적 단순한 탄핵 절차가 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미 최대 경제 대국 브라질 상황도 비슷하다. 2010년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예산 유용 등 혐의로 2016년 탄핵으로 물러났다. 당시 탄핵안은 상원 전체회의에서 여유 있게(찬성 61표, 반대 20표) 통과됐다. 호세프 전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다음 날 탄핵무효 소송을 냈지만 브라질 대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브라질 최초 직선 대통령인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도 탄핵으로 낙마했다. 1992년 콜로르 전 대통령은 물가상승을 막고자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극단적인 조처를 시도하다 실패했다. 여기에 비리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의회가 탄핵 절차를 개시했다. 이에 콜로르 전 대통령은 돌연 사임했지만 상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가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후 1994년 콜로르 전 대통령에 대한 부패와 범죄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에콰도르도 대통령 탄핵 경험이 있다. 압달라 부카람 전 대통령은 1997년 당선 6개월 만에 짐을 쌌다. 의회는 부카람 전 대통령에 대해 공금횡령, 정실인사 등 부패와 콘서트 및 앨범 제작에 집착하고 대통령의 '기행'에 대해 무능하다고 평가하며 이같이 조치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압두라만 와히드 전 대통령 역시 의회의 탄핵안 가결로 쫓겨났다. 와히드 전 대통령은 초반 개혁 조치로 국민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조달청의 공금횡령 사건 등 각종 부패 스캔들로 취임 2년 만인 2001년 7월 탄핵 당했다.
리투아니아에선 롤란다스 팍사스 전 대통령이 헌법 위반 혐의로 탄핵됐다. 그는 2004년 4월 대선 기간 재정후원자인 러시아 기업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헌법질서를 어지럽혔다는 혐의로 쫓겨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1993년 7월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24년 만에 국회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탄핵 소추 대통령 셋, 모두 구사일생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탄핵소추 당한 대통령이 총 3명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들 모두 탄핵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지도자들이다. 미국 정부 수립 이후 앤드루 존슨,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2회)이 하원에서 소추가 가결됐을 뿐 상원 심판 과정에서 모두 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당시 두 번 탄핵소추 됐지만 모두 상원 심판에서 부결됐다. 그는 부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대로 직무를 수행해 국정 공백이 없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8년 성추문 관련 위증 혐의로 탄핵 소추됐으나 탄핵안이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가까스로 자리를 지켰다.
존슨 전 대통령도 대표적인 '구사일생' 사례다. 1868년 남북전쟁 후 남북화해 정책을 거부한 국방장관을 해임한 건으로 의회의 탄핵 심판대에 올랐지만, 위기를 면했다. 당시 하원을 통과한 탄핵안은 상원에서 정족수에서 단 한 표가 모자라 자동 폐기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물러났다. 탄핵안이 가결되기 전 강제로 쫓겨나는 최악의 불명예를 피한 셈이다. 미국 20세기 최악의 정치 스캔들로 기록된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 전 대통령이 재임한 1972년 발생했다. 닉슨 행정부는 당시 민주당 전국본부 사무실을 도청한 해당 사건이 언론 보도로 폭로되자 처음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나 결국 닉슨 전 대통령이 사건은폐 모의, 위증 교사, 수사 방해한 사실 등이 알려졌고 분노한 하원 법사위원회가 1974년 '탄핵 결의'를 가결했다. 이에 닉슨 전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전 자진 사임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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