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심 수출품목 타격 예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3일(현지시각) 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도착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에 대한 관세 도입을 예고했다. 지난 2일 ‘상호 관세’ 발표 때는 반도체를 제외했으나, 조만간 별도로 관세를 매기겠다고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반도체 관세 도입이 아주 금방(very soon)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107억달러(약 15조원)에 달하는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시스템 반도체보다 한국 주력인 메모리가 관세의 영향을 더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메모리는 양산 제품이기 때문에 가격 변동에 훨씬 민감하다.
트럼프의 관세 발언은 거센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나스닥은 지난 3일 6% 폭락했고, 4일 아시아 증시도 떨어졌다. 중국 정부는 오는 10일부터 미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상품에 대해 34%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4일 발표했다.
그래픽=백형선
◇반도체 대량 들어가는 AI·빅테크 기업들 위협
반도체 관세가 실제 시행된다면 전 세계적으로 IT 제품에 대한 무관세 원칙을 규정한 1996년 정보기술협정(ITA)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반도체에 관세가 부과된다. 관세는 복잡하게 얽힌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와 이를 탑재한 전자 기기는 여러 국가를 거쳐 만들어진다. 심지어 미국산 반도체조차도 중국·동남아시아 등으로 보내져 조립(패키징)된 후 다시 미국으로 역수출되는 경우가 많다. 애플 아이폰에 사용되는 칩의 경우 20국 국경을 넘나들며 만들어지기도 한다.
관세로 인한 반도체 가격 상승은 다른 산업에도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동차·가전·기계 등에 반도체가 대거 들어가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반도체를 직접 수입하는 금액은 820억달러(약 118조원)이지만, 반도체가 들어간 기계·전자 제품 등의 수입액은 그보다 훨씬 많다”며 “반도체를 포함한 제품은 어차피 아시아 공급망을 거쳐 관세가 붙는 제품 형태로 미국에 되돌아온다”고 했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자국 내 생산으로 이익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가격 상승으로) 수요가 줄어들면서 보호무역 정책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상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반도체가 대규모로 들어가는 AI 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로이터는 “오픈AI와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는 투자 규모가 5000억달러에 달하는데, 비용 증가로 인해 데이터센터 확장과 AI 도입이 지연될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관세는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하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들의 클라우드(가상 서버)와 소프트웨어 산업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긴장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가 받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주로 양산형으로 생산되는 메모리 반도체는 고객이 주문해 맞춤형으로 만드는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보다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비율이 큰 나라다. 지난 1분기(1일 기준)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 가운데 63.4%가 메모리였다. D램 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 1·2위 기업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한국과 중국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두고 있는 만큼, 트럼프 정부의 관세를 피할 수 없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위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이 자국 내 생산 비율을 늘리고 있는 것도 한국에는 부담이다. 마이크론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아 뉴욕주와 아이다호주에 메모리(D램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지을 예정이다. 현재는 대만·일본에서 대부분 반도체를 생산 중이지만, 향후 물량의 40%를 미국에서 제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투자하는 시설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와 패키징 공장이기 때문에 메모리를 미국에서 만들 수는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는 마이크론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며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보다 메모리 위주의 한국 반도체 기업이 받는 충격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는 PC·스마트폰 등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다. 양산형으로 경기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큰 편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가 대표 제품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연산·제어 등의 기능을 하는 반도체로, 고객사 주문에 따른 맞춤형 제작을 한다. 스마트폰 AP, CPU, GPU, 차량용 반도체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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