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제공
이번주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에는 다양한 채소들의 모습이 실렸다. 모두 가지속(Solanum)에 포함되는 식물이다. 가지속이라는 하나의 식물 종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물로는 전 세계 농업의 근간을 이루는 토마토와 감자가 있다.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는 토착 작물 등 다양한 종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이 가지속 전체를 아우르는 유전체 분석에 성공했다. 마이클 섀츠 미국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 연구원팀은 22종에 이르는 가지속 식물을 대상으로 유전체를 비교하고 이들이 어떻게 진화하며 각기 다른 작물로 발전했는지 추적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지난달 5일 '네이처'에 게재됐다.
그간 작물 유전체학은 보통 하나의 대표 품종을 기준으로 유전 정보를 해석했다. 하나의 유전체만으로는 한 종의 유전적 다양성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바로 ‘판게놈(pan-genome)’이다. 특정 종 안에서 다양한 품종이나 개체들의 유전체를 모아 하나의 집합체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번 연구는 판게놈 개념을 더 확장해 단일 종이 아니라 하나의 ‘속(genus)’ 전체를 아우르는 ‘속 수준의 판게놈’을 처음으로 구축했다.
연구팀은 가지속 작물 22종 가운데 주로 연구됐던 토마토·감자는 물론 아프리카 가지, 나란질라 같은 토착 작물도 포함해 이들의 유전체를 정밀 비교했다. 그 결과 전체 유전자의 약 60%만이 모든 종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는 종이나 품종마다 다르게 존재하거나 중복된 유전자들이 다양하게 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열매 크기나 형태와 같이 형질에 관여하는 유전자군에서 중복과 분화가 활발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열매 크기를 조절하는 CLAVATA3(CLV3) 유전자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가지 품종에서 이 유전자의 '일생'을 추적했다. 원래 기능을 수행하던 CLV3 유전자가 중복되자 같은 기능을 가진 새로운 유전자가 나타났다. 이후 이 유전자 중 하나는 기능을 잃고(위유전자화) 또 다른 유전자 조각과 합쳐지면서 새로운 기능을 얻게 됐다. 이 변화는 열매의 크기와 내부 기관 수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속에 속한 작물이라도 유전자 복제와 그 후속 분화는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작물에서 발견된 유전자가 다른 작물에서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거나 심지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유전자 교정 기술이 작물 간 전이에 적용될 때 한계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덜 연구된 토착 작물들의 유전체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면 주요 작물의 형질을 보다 예측 가능하게 설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 사용된 유전체 정보는 단순한 품종 간 비교를 넘어 향후 유전체 기반 품종 개량 전략에도 직접적인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한 유전자 목록 나열이 아니라 유전자의 수와 배열, 기능 변화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비교를 통해 작물 유전체의 진화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조망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 doi.org/10.1038/s41591-025-03602-0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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