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전원일치 결론 내놓고 '결론' 부분 추가
5쪽에 이르는 이례적 분량
헌법 제1조1항으로 시작해 '대한국민'으로 끝나
일각선 "비상계엄 선포 '선의'로 해석" 비판도
< 문형배 입에 쏠린 눈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일인 4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이 양쪽 대리인단과 취재진, 여야 의원, 일반 방청객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의 '결론' 부분 작성에 특별한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 제1조 1항으로 시작해 "대한국민"으로 끝나는 이 부분은 초안 결정문 작성 후 재판관들의 의지를 반영해 추가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판관들은 전원일치로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기로 합의한 뒤 당초 결정문을 작성했으나, 이후 결론 부분을 별도로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탄핵심판 전담 태스크포스(TF) 소속 헌법연구관에게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관계 인정과 법률 위반 검토, 중대성 판단 논리가 담긴 결정문의 다른 부분들은 이미 작성이 완료된 상태에서 재판관들의 추가 지시로 결론 부분 초안이 여러 차례 검토됐으며, 지난 1일 선고일 발표 이후 이틀간 열린 평의와 선고 당일인 4일 아침까지도 최종 문구를 검토했다.
통상 헌재 탄핵심판 결정문의 결론은 3~4줄에 그친다. 대개는 재판관의 의견 분포와 그에 따라 결정된 주문만을 간략히 적는 것이 관례였다. 박근혜·노무현 전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사건에서도 같은 방식이 적용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 이후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심리적 내전'이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법적인 논리를 넘어 통합과 협치를 위한 메시지를 던질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헌재 안팎에서 제기됐다. 헌재는 이를 고려해 이례적으로 5쪽 분량의 긴 결론을 통해 한국 사회가 되새겨야 할 '헌법 정신'을 강조했다.
수미상관 구조의 헌법적 의미
별지와 보충의견을 포함해 전체 114쪽에 달하는 윤 대통령 탄핵 결정문 중 83~87쪽까지 쓰인 결론 부분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이는 헌법 제1조 제1항의 문장이다. 마지막 문구에는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을 강조하는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는데, 이는 헌법 전문(前文)에 등장하는 단어다. 결론의 맨 앞과 맨 뒤 양쪽 끝에 헌법적 의미가 '수미상관' 구조로 배치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 결론 캡처한 부분
이처럼 헌법 본문의 총강을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민주공화국으로 천명한 1조 1항과, 헌법 본문 앞의 '서문'에 해당하는 전문에서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을 강조하는 '대한국민'이라는 두 표현이 맨 앞과 맨 뒤 양쪽 끝에 '수미상관' 구조로 배치됐다.
헌재는 헌법 1조 1항을 결론의 첫머리에 적은 후,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했다. 이는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헌재가 선언한 민주주의의 속성이다.
네 단계로 전개된 논리 구조
이후 헌재는 네 단계로 논리를 전개했다. 윤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야당의 예산 삭감과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 탓에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돼 가고 있다는 인식'을 가졌을 수 있으나, 그 책임 소재를 일방으로 한정하기 어려우며 문제 해결 역시 민주주의 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목적을 '국회와의 대립을 병력을 동원해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헌법 개정안 발의, 국민투표, 법률안 제출, 위헌정당해산 제소 검토 등 민주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도 있었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해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했다.
헌법 용어 '대한국민'의 의미
마지막 문장도 이목을 끌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을 위배해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며 결론 부분을 끝맺었다.
말미에 쓰인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하는 헌법 전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표현이 아니나 재판관들은 논의 끝에 헌법 전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선고 당일 22분간 낭독한 7200자 분량의 선고 요지에는 '민주'라는 단어가 9회, '국민'은 13회 등장한다.
일각선 "계엄 선포 의도를 선의로 해석" 비판도
헌재 결정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국 사회 헌법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는 평가가 상당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할 수 없습니다'가 반복되어 이어지는 건조한 문장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결정문이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의도를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저해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선의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비서관을 지낸 이광철 변호사는 "헌재가 윤석열의 계엄 선포 행위에 대해 '피청구인의 인식과 책임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서술한 것이 계엄 선포 행위를 변명하는 효과가 있다"며 "결정문에서 '위헌정당해산을 제소할 것인지를 검토할 수 있었다'는 표현이 마치 야당이 위헌 정당일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향후 유사한 군사행동에 변명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결정문 결론 부분이 다시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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