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과학장비 가격 치솟을 것"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전 세계 과학 도구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미국 연구기관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재정적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장비 산업계는 관세 정책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연구장비 공급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를 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인상이 미국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무역 적자를 해소하며 미국 제조업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발표 후 글로벌 금융 시장은 대혼란을 겪고 있다. 증시 폭락, 국제 유가 급락 등 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연구기관들의 공포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실험실 장비, 시약 등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 연구에 필요한 장비의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미국에 유리관, 시약 등 기본실험도구와 컴퓨터 칩, 액정 디스플레이(LCD), 세균배양기 등 첨단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현미경, 정밀분석장치 등 고급실험장비를 공급하고 있고 스위스와 영국은 진단도구와 특수 화학제품, 멕시코는 플라스틱 제품, 캐나다는 DNA 염기서열 분석기와 세포계수기 등을 미국에 공급하고 있다. 미국 실험실에서 쓰이는 유리도구용 멸균기, 원심분리기 등도 상당수가 유럽에서 생산된다.
연구기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 자금 삭감, 연구 보조금 취소 등으로 연구 예산을 축소하면서 이미 심각한 자금 부족 압박을 받고 있다. 이번 관세 부가는 연구기관들에 재정 부담을 추가로 안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과학 장비·용품 공급 회사인 ‘ARES 사이언티픽’의 드류 케보키안 최고경영자(CEO)는 네이처를 통해 “우리가 연구기관들에 공급하는 제품의 약 60%는 미국에서 생산되고 40%는 수입산”이라며 “미국산 제품이라 해도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령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DNA 염기서열 분석기는 독일의 광학장치와 중국의 반도체에 의존해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관세 인상이 미국 제조업계의 부활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도 전망도 내놨다. 케보키안 CEO는 “해외에서 수입하는 일부 과학 제품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여전히 미국 제품보다 저렴하다”며 기존보다 해외 제품을 비싸게 구입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기간에 공급업체를 변경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카난 구네스 콜루 보스턴대 의사결정과학연구소 교수는 “공급업체를 변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업체와 신뢰를 구축하고 품질을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급광학현미경을 비롯한 일부 과학 제품들은 미국에서 아예 생산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세 인상의 영향을 특히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국가들은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은 전 세계 실험 장비 가격이 함께 치솟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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