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거버넌스 대개편 예고
'AI혁신부' 신설론 급부상, 관료 중심 행정 구조에 균열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조용하지만 중대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거버넌스 대개편’이라는 정부 조직 혁신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이후 문재인,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정부조직 개편이 거의 없었던 가운데, 정책의 동력이 정치나 행정이 아닌 기술로 이동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단연 인공지능(AI)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 중심의 권력 구조를 견제하고, AI를 중심으로 한 대부처 신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차기 대통령 유력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AI강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경제·교육·산업 전반에 AI를 접목하는 구상을 적극 추진하면서 변화의 흐름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기재부 권력, AI 대부처가 견제하나
현재 정부 권력의 중심에는 기획재정부가 있습니다. 경제 정책과 국가 예산을 총괄하는 부처로서, 중앙 행정기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통합되며 지금의 거대 부처로 재편됐습니다.
하지만 기재부가 과도한 조정 권한을 행사하며 기술 혁신과 예산 집행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사실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기술 환경에서 기재부의 중앙집중형 구조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지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차기 정부는 기재부 중심 체계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개편을 넘어, 관세 전쟁과 디지털 무역장벽이 맞물린 글로벌 경쟁 구도 속에서 대한민국이 기술 기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합니다.
‘AI혁신부’ 탄생하나… 예산·R&D·산업까지 한 곳에
핵심 제안으로는 ‘(가칭) AI혁신부’ 신설이 꼽힙니다. 이는 AI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국가 운영의 중심 축으로 삼겠다는 구상입니다. 예산 편성부터 연구개발(R&D), 인프라 구축, 산업 진흥까지 AI 관련 기능을 하나의 대부처로 통합하자는 내용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AI는 ‘불의 발견’처럼 우리 삶에 내재화된 기반 기술이 될 것이므로, 이에 걸맞은 정부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개편이 현실화될 경우, 기획재정부의 일부 예산 기능,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 인프라·AI 산업 진흥·R&D 기능, 산업통상자원부의 제조업 AI 접목 정책 등이 모두 ‘AI디지털혁신부’ 아래로 재편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과학기술 분야 전체를 AI 중심 부처에 포함할지는 논란입니다. 일각에선 과학기술과 고등교육 기능을 통합해 ‘(가칭) 고등교육과학기술부’를 신설하는 방안도 함께 제기됐습니다. 이는 연구개발(R&D)과 이공계 인재 양성을 연계해 의대 쏠림 현상을 해소하고, 미래 산업 경쟁력의 기반을 다지려는 목적입니다. 이 경우 입시 정책은 별도의 위원회로 이관해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구상도 있지요.
‘합의제 방통위’냐 ‘미디어 콘텐츠부’냐… 미디어 거버넌스도 분화 논의
‘AI디지털혁신부’가 만들어질 경우, 이는 미디어·콘텐츠 분야의 정부 조직 개편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탄생한 방송통신위원회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과기정통부의 통신·방송 정책을 통합해 ‘거대 합의제 기구’로 확장하자는 의견과, OTT·AI 등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보다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가칭)미디어콘텐츠부’와 같은 독임제 부처를 신설하자는 주장이 맞서고 있지요.
전자는 공적 가치를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며 여야 합의제 구조를 강조했고, 후자는 민첩한 시장 대응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강조하며 독임제 체제를 요구합니다.
디지털 시대 거버넌스는 기술로 설계해야
이러한 논의는 학계에서도 본격화됐습니다. 서울대 공익산업법센터는 지난 5일 ‘AI 중심 시대의 합리적인 방송통신규제 거버넌스’ 세미나를 열고 ‘AI혁신부’, ‘디지털혁신부’ 신설을 포함한 새로운 정부 조직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디지털 시대의 거버넌스는 정치가 아니라 기술이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정책 집행의 효율을 높이고, 예산을 전략적으로 배분하며,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국가 핵심 전략 도구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조직은 기술을 이해하고, 데이터 흐름을 파악하며, AI의 변화를 체감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설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복판에 ‘AI혁신부’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김현아 (chao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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