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LA산불 10년 추적분석 돌입
자연-주거지 태운 ‘혼합형 산불’… 배출되는 오염물질 성분 달라져
美 연구팀, 분석에 367억원 투입… “거주민 건강변화 추적 관찰할 것”
국내 산불이재민도 건강 유의해야… 오염물질 막아주는 마스크 사용을
드론으로 올해 로스앤젤레스(LA) 대형 산불 중 하나인 이턴 산불로 인해 파괴된 동네의 모습을 촬영했다. 화마가 동네를 대부분 휩쓴 가운데 주택 몇 채만 살아남았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주거지를 덮치면서 과학자들은 산불이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경남 산청군, 경북 의성군, 울산 울주군 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기록됐다. 산불로 거주지, 가족, 재산을 잃은 이재민들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회복하길 바라지만 산불이 어떤 유해물질을 남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며 과학자들은 산불이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등 최근 주요 과학 외신에 따르면 올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을 비롯해 2021년 미국 콜로라도 볼더, 2023년 미국 하와이 라하이나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활발하게 일하는 지역을 덮치는 산불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숲을 태울 때 발생하는 입자와 주거지역 화재로 생기는 오염물질이 대규모로 뒤섞일 때 장기간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불을 겪은 주민들이 산불을 겪지 않은 주민에 비해 우울증과 불안증을 더 많이 겪으며 폐 기능도 나빠졌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 ‘혼합형 산불’ 오염물질 양상도 달라져
최근 한반도를 덮친 대형 산불, 로스앤젤레스 산불 등의 특징은 산불이 숲을 태울 뿐 아니라 거주지를 태우는 ‘혼합형 산불’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기후가 따뜻해지고 숲이 무성해지는 데다 산, 숲 등 자연 주변에 더 많은 주택이 지어지고 있어 더 크고 맹렬한 혼합형 산불이 발생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제 공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환경연구레터스(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거주지와 자연이 만나는 경계 지역이 24% 증가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화재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산불이 이동해 주거지를 덮칠 때 산불과 도시 화재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 문제가 이중으로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 산불은 불이 산에서 거주지로 번지면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종류가 바뀌었다. 로스앤젤레스 동부에서 발생한 ‘이턴 산불’은 발화 초기 식물을 주로 태웠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미세입자, 독성가스, 암모니아 등 혼합물이 배출됐다. 발화 몇 시간 뒤 이턴 산불은 주택가로 확산되며 납 기반 페인트, 리튬 배터리, 비닐, 유리 섬유 단열재, 전선, 나일론 옷, 고무 타이어 등을 태우면서 다양한 독성 화합물을 뿜어냈다. 독성 화합물은 산불에서 나온 오염물질과 뒤섞였다.
이턴 산불이 발생한 지역에서 4km 떨어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까지 재가 날아왔고 재에서 상당히 높은 농도의 납이 발견됐다.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연구팀에 따르면 2021년 콜로라도 산불 당시에도 화재 피해를 간신히 피한 한 주택을 검사한 결과 일반 화재에서 최소 수 시간에서 최대 수일이면 사라지는 벤젠이 몇 주 이상 잔류했다.
● 집으로 돌아가도 안전할까… 장기 연구 돌입
로스앤젤레스 산불 이후 이재민들은 집으로 언제 돌아가야 안전한지, 연기에 노출된 옷과 기구를 그대로 사용해도 되는지 등 크고 작은 의문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하버드대, 텍사스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 대학과 기관이 공동 연구팀을 꾸려 산불이 남긴 장기적인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10년 동안 약 2500만 달러(약 367억 원) 이상의 비용을 투자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연구를 이끄는 카리 나도 하버드대 교수는 “(산불의 영향으로) 면역세포인 ‘T세포’가 돌연변이로 인해 림프종으로 바뀌는 데 10년이 걸릴 수 있다”며 “50개 주택에 사는 로스앤젤레스 거주민들을 조사해 장기적으로 산불로 인해 어떤 건강 변화가 생기는지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주택에서 재를 모아 오염물질이 얼마나 유지되는지도 살펴본다.
UCLA 연구팀은 화재를 겪은 로스앤젤레스 주택 안팎에 공기 중 화학 물질을 측정하는 센서를 배치하고 연구 중이다. 화재 피해를 입은 뒤 구조물과 지면에서 어떤 오염물질이 배출되는지, 공기 필터와 같은 예방 조치가 거주자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텍사스대 연구팀은 대형 전기차를 이용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남아 있는 독성물질을 탐색하고 있다. 자동차는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염물질에 관한 지도를 그린다. 건축 자재와 건물의 연식 등에 따라 오염물질의 구성과 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파악할 계획이다.
2023년 라하이나 산불 이후 하와이대 연구팀은 산불 피해 주민을 대상으로 화재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팀은 연구 중 산불을 겪은 주민들이 산불을 겪지 않은 주민에 비해 우울증과 불안증을 더 많이 겪으며 폐 기능도 나빠졌다는 점을 밝혀냈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불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도 거주지로 돌아갈 때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주택가를 태우는 산불로 인해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신경계를 교란시키는 독성물질과 발암물질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기오염 수치를 확인하고 수치가 안정되는 것을 확인한 뒤 거주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거주지 정리를 할 때 오염물질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공기청정기를 돌린 상태로 물걸레질로 집 안 곳곳을 닦은 뒤에 쓸어내야 한다. 이재민 중 고령층이 많기 때문에 폐에 오염물질이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분간 KF94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지럽거나 구토 증세가 있다면 바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
이채린 동아사이언스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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