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시대’를 연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이번 조기 대선에서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차기 대통령 집무실의 위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 없이 곧바로 임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당장은 용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해도 대선 주자들이 집무실 이전 공약으로 윤석열 정부와의 차별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복귀, 광화문(정부서울청사), 세종시 이전 등 여러 대안이 거론되는 가운데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시로 이전할 경우 ‘수도 이전’ 논의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복귀? 광화문? 세종 이전?
‘국방부와 불편한 동거’ 용산 논란
대선주자들 尹정부와 차별화 노려
일각 “누가 되든 일단은 용산에 가야”
7일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 이전 공약은 19대와 20대 대선 과정에서도 화두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고, 윤 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실무적 검토를 거쳐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실을 이전했다. 하지만 국방부와 ‘불편한 동거’ 중인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적절성 논란 등으로 용산 시대가 계속될지에 대해선 정치권에서도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이 많다.
우선 물리적으로 두 달 안에 용산 외 대안을 찾기 어렵다 보니 일단은 차기 대통령은 용산에서 임기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지난 4일 “대통령 집무실은 어쩔 수 없이 누가 되든 용산에 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용산 대통령실이 윤석열 정부의 유산이란 점에서 임기 중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추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용산 대통령실에 그대로 들어가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청와대는 들어갈 수는 있는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청와대 시설을 개방했던 만큼 다시 청와대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국민 설득을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의 이전도 검토될 수 있다. 광화문 집무실은 도심 접근성이 높아 국민과의 소통에 유리하다는 점, 다른 정부 부처와의 협업이 용이하다는 점 등 여러 장점이 있지만 개방된 공간이라 대통령 경호와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 실무 검토 과정에서도 광화문 인근의 경우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주요 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막대한 비용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기존 계획된 대통령 2집무실(세종집무실)을 집무실로 전환하자는 의견도 있다. 행정부처가 모여 있고 수도권 집중 완화를 통해 실질적 지방 분권 시대를 열 수 있는 만큼 명분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세종 이전의 경우 충청권 표심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권 주자들도 눈독 들일 만하지만 수도권 표심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불필요한 위헌 논란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민주당 내에서는 세종 수도 이전과 관련된 내부 검토에 들어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민주당이 대통령 집무실 세종시 이전을 공약할 경우 22년 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행정수도를 완성하겠다는 명분론을 내세울 수 있다. 또한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부인 김혜경씨의 고향이 충북 충주시인 점을 고려해 소위 ‘충청 사위론’을 꺼내 들며 충청권 표심의 압도적 지지를 호소할 수도 있다.
22년 만에 다시 띄운 신행정수도법
지난달 이재명 지시로 보고서 작성
지방분권시대 실현·충청표심 공략
특별법, 위헌성 논란 재현 가능성도
실제 이 대표는 지난달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완전히 이전하는 방안이 담긴 세종시 완성 검토 보고서를 보고받았다고 한다. 복기왕·강준현 민주당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이 이러한 내용의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법)을 이르면 이달 중순 발의할 예정이다.
복 의원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접근했던 방식과 같은 경로”라면서 “다만 그때와 상황이 달라진 것은 행정, 경제, 문화, 사회 모든 것들이 다 집중된 수도가 아닌 행정수도라는 명칭을 해 놓으면 경제수도, 문화수도 등 여러 가지 특화된 수도의 개념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별법 형태로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 이전을 추진할 경우에는 2004년 헌재 위헌 결정에 저촉된다는 주장에 따라 위헌성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 이에 복 의원은 “위헌 심판 제청이 있으면 헌재의 판단을 받아보면 된다”며 “만약에 위헌 문제에 걸린다고 하면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개헌을 통해서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신행정수도법은 2004년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실효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인정하면서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가 수도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를 건설했다.
강윤혁·김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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