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학이 진공관에서 반도체 칩으로 옮겨가며 폭발적으로 발전했듯, 광학 시스템도 고집적화 흐름을 따르고 있습니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그 최전선에 있는 기술입니다”
한상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교수는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와 미세전기기계시스템(MEMS)을 융합한 초저전력 광집적회로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다.
초저전력 광집적 회로 기술은 실리콘 기반 반도체 공정에서 빛을 정밀하게 다루는 기술이다. 기존 전자식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뛰어넘는 차세대 광학 컴퓨팅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한상윤 DGIST 교수
한 교수는 “실리콘 포토닉스에 대해 '빛으로 동작하는 회로'를 반도체 칩 안에 집적하는 기술”이라며 “렌즈나 거울, 광섬유 등 전통적인 광학 부품 대신, 실리콘 기반의 CMOS 공정을 활용해 광소자를 칩 위에 대규모로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광집적회로 및 실리콘 포토닉스의 가장 큰 한계는 낮은 집적도입니다. 이론적으로 구현 가능한 회로 밀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재의 기술은 에너지 효율, 손실, 면적 등 다양한 제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한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MEMS 기술을 도입했다. 그는 “실리콘 포토닉스 회로의 구동원리는 굴절율을 조절하는 것인데, MEMS 기술을 이용하면 극소의 에너지로 매우 큰 굴절율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서 “실리콘 포토닉스의 광학적인 특성 덕분에 MEMS 소자의 구조를 매우 신뢰성 있게 구현할 수 있고,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의 이같은 접근 방식은 2023년 11월 '네이처 포토닉스(Nature Photonics)'에 실린 자신의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논문에서 기존 최고 기술보다 100배 낮은 대기전력을 실현했고, 이를 바탕으로 포토닉스 회로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이 논문은 실리콘 포토닉스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고, 한 교수는 '미국 The Electromagnetics Academy'의 'PIERS 심포지엄'에서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한 교수의 연구실적은 실제 상용화를 이끌고 있다. 현재 유럽 IMEC 등과 함께 하는 국제협력프로젝트에서 실리콘 포토닉스 기반 광GPU 개발에 핵심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전자식 GPU 대비 100배 향상된 연산 속도와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다. 인공지능(AI) 모델의 대형화와 연산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이 기술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위기를 해결할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한 교수 기술은 다른 응용분야는 대규모 광스위치다. AI 슈퍼컴퓨터는 수만 개의 GPU를 광기술로 연결해야 하고, 이들 사이의 데이터 흐름을 동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고속, 고신뢰성의 스위치가 필요하지만 현재의 상용화된 기술은 광-전 변환이 필요한 미완의 기술이다. 하지만 한 교수가 UC버클리 박사과정시절부터 개발했던 대규모 광스위치 기술은 집적도와 규모 측면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
“AI는 전자공학의 기하급수적인 발전 위에서 탄생한 분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회로 기술의 진보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되었고, 혁신은 기존 기술을 재조합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전자 중심의 컴퓨팅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라며 “실리콘 포토닉스는 전자와는 전혀 다른 물리현상, 즉 빛을 기반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컴퓨팅 아키텍처를 가능하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양자컴퓨터가 차세대 컴퓨팅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고전적 컴퓨팅과는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라면서 “반면 고전 컴퓨팅의 성능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이를 감당할 기술적 해법은 반드시 실리콘 포토닉스를 중심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기존의 전자반도체 시장은 이미 질서가 고착화되어 있고, 강대국의 산업 논리에서 한국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실리콘 포토닉스는 아직 '판'이 만들어지는 중”이라면서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새로운 기술 패권에 진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인 만큼 실리콘 포토닉스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대구=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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