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온적인 李대표 압박카드 활용
보수·진보떠나 개혁어젠다 판단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왼쪽 두번째)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조기 대선 구도를 ‘개헌 대 반개헌’으로 전환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찬탄 대 반탄’ 구도에 끌려가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개헌론 띄우기를 통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정치 개혁을 반대하는 반개헌 세력’ 프레임으로 가둬두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7일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탄핵과 계엄이라는 구도 아래서는 민주당에 완전히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개헌론이 여야나 보수·진보를 초월해서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개혁적인 의제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선·개헌 동시 투표’ 제안을 즉각 환영하고 나선 건 이런 대선 전략 차원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윤 전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이 60%로 반대 여론(35%)보다 월등히 높았던 3월 첫째주 조사에서도 개헌에 대한 찬성 입장은 54%로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헌재의 선고 이후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환영하는 여론은 더 높아진 상황이다.
개헌론은 국민의힘이 ‘계엄 옹호 정당’이라는 공세를 희석할 수 있는 이슈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가 진행 중이던 지난 2월 27일 일찌감치 당 개헌특위를 띄우고 개헌 준비에 착수했다.
국민의힘 주자들이 이 대표와의 차별성을 부각할 수 있는 지점이 개헌이기도 하다. 이 대표가 이날 ‘조기 대선·개헌 동시투표’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자,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반개혁’ 프레임을 걸고 나섰다.
당 개혁특위 위원장인 주호영 국회 부의장은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며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헌법 체계를 지금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 정치권은 국민에게 씻지 못할 큰 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륙할 때마다 추락하는 비행기의 기종을 바꾸지 않고, ‘내가 조종하면 괜찮다’고 만용을 부리는 일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이 대표를 겨눈 공세를 폈다.
국민의힘은 의회 권한 분산을 개헌 방향으로 거론하며 입법권력을 쥔 이 대표에게 행정권력까지 넘겨선 안 된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회의에서 “1987년 개헌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왕적 국회 출현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거대 야당이 등장해 입법·예산·인사 전반을 통제하고 여소야대 구조가 고착화된다면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가 황제가 된다”고 말했다.
대권 주자들도 가세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재명 민주당은 시대교체를 반대하는 ‘호헌세력’임을 보여줬다”며 “한마디로 개헌은 ‘나중에, 나중에’ 하고, 의회 독재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까지 다 휘둘러 보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