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개봉 마약 소탕 범죄액션 ‘야당’
주인공 ‘이강수’ 역 강하늘의 새로운 얼굴
‘용식이’는 잊어주세요. 마약판을 흔드는 브로커 ‘야당’ 이강수로 돌아온 배우 강하늘을 8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관식이(폭싹 속았수다)’ 이전에 ‘용식이(동백꽃 필 무렵)’가 있었다. 만인의 연인 용식이로 뭇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등극한 강하늘이 개봉을 앞둔 영화 ‘야당’을 통해 ‘길바닥 양아치’ 연기도 접수했다. 강하늘이 연기한 이강수가 범죄자와 수사기관 사이를 아슬아슬 줄 타는 묘기를 감상하다 보면 2시간의 러닝타임이 후딱 지나간다.
8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하늘은 “개인적으로 즐겨 보는 장르는 ‘동백꽃 필 무렵’이나 ‘폭싹 속았수다’이고, 범죄 오락물이나 남성 누아르 장르를 특별히 (연기)로망으로 삼지 않아 왔다”면서 “그럼에도 ‘야당’은 소재가 너무 참신하고 이 직업 자체를 꼭 연기로 구현해 보고 싶었다”고 이강수 역할을 소화한 소회를 밝혔다.
영화 ‘야당’ 스틸컷
영화 제목 ‘야당’이 국회에서 여당의 상대 의미로 하기 쉽지만, 사실 마약계에선 완전히 새로운 의미인 ‘수사기관에 정보를 넘겨주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칭하는 은어다. 극 중 구관희 검사(유해진 분)가 대리기사를 뛰다 억울하게 마약 전과를 덮어쓴 이강수를 불러 “너 야당질 한번 해볼래?”라며 제안하면서 대한민국 전국구 1타 ‘야당’ 이강수가 탄생한다.
“대본 처음 읽었을 땐 (야당이란 직업이) 허구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읽을수록 허구라기엔 너무 디테일한 거예요. 아, 이건 진짜구나. 너무 흥미로웠어요. 관객분들한테 영상화해서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강수가 어쩌다 소시민 대리기사에서 마약 전과범이 되고, 또 거기서 어떻게 수사기관과 약쟁이들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줄타기하는 야당이 되는지를 강하늘은 입체적으로 캐릭터의 완급을 조절하며 설득해 나간다.
영화의 포문을 여는 것도 강하늘의 목소리다. 진중함과 경박함의 척도가 있다면 경박함에 5분의 4 정도 치우친, 자신만만하고 거만함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로 ‘야당’이 하는 일을 내레이션한다.
강수는 수사기관에 잡혀 들어온 마약 범죄자에게 알선·판매책 등 일명 ‘대가리’들을 일망타진하는 작전에 동참하면 형량을 깎아주겠다고 형사들과 함께 바람을 넣는다. 서울 도심에 가당키나 할까 싶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허머(미군용 차량인 험비를 민간용으로 제작한 픽업트럭)를 타고 나타나 검거 작전의 마무리도 돕는다. 가슴팍이 드러나도록 부담스럽게 파인 브이넥 티셔츠와 화룡점정의 빨간 렌즈 선글라스를 끼면서 ‘야당’의 주인공은 특수부 검사도, 마약수사대 에이스 형사도 아닌 ‘이강수’임을 선포한다.
강하늘이 연기한 이강수는 거만한 전국구 1타 야당에서 하루 아침에 골방에 갇힌 마약 중독자로 굴러떨어진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강하늘은 “주인공 강수가 너무 비호감이거나 그저 악하기만 한 캐릭터가 되면 관객들이 이 인물에 실망하고 영화를 끝까지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았다”며 “그렇다고 이 친구가 하는 일을 정당화해서 선하게 보여서도 안 됐기 때문에 수없이 연기의 톤을 조절하면서 중간 어디쯤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강수 캐릭터가 있기에 영화 ‘야당’이 이전 한국 범죄 오락영화 ‘내부자들’, ‘베테랑’, ‘부당거래’ 등과 비교해 신선함을 잃지 않았다는 평이 많다. 강하늘은 황병국 감독이 실제 활동 중인 야당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연구했다고 말했다.
“진짜로 자신감이 넘치는 분들이더라고요. ‘나 잡으면 같이 엮여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이런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더라고요. 전체적으로 떵떵거리는 느낌, 행동거지는 거만하고 옷차림도 엄청 화려하고요. 그래서 저도 제 캐릭터를 만들 때 이런 느낌을 넣어보려고 했죠.”
그러던 강수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혀 끈 떨어진 마약중독자가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팔뚝에 주사기는 꽂지 마”라며 ‘형’을 자처한 관희가 강수의 필요가 다하자마자 재빠르게 손절해 버린 것이다. 팔다리 피부가 썩어 문드러진 마약 중독자로 변신한 강하늘은 처절한 비명을 지른다.
“감독님과 늘 이야기하며 상기했던 것이, ‘우리는 마약을 미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한 번 빠지면 얼마나 회복하기가 힘든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최종적으로 영화에 나온 장면들 외에도 환각, 환청에 시달리며 강수가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별의별 장면을 다양하게 찍어놨었죠.”
엎치락 뒤치락하는 강약 구도, 믿음이 배신으로 바뀌는 순간 등 영화 ‘야당’은 익숙한 재미를 선사한다.
입안에서 모래로 변해버리는 음식을 간신히 먹으면서, 흐물거리는 근육을 다시금 키워나가면서 약을 끊고자 노력한다. 언어장애라는 후유증은 남았지만 강수가 제 손으로 만든 복수의 시간이 시작되며 영화의 마지막 3분의 1은 통쾌한 결말로 나아간다.
강하늘은 “다큐멘터리 등을 찾아보니까 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개인마다 전부 다른 후유증을 경험한다고 해서 그 장면을 표현하는 게 자유로웠다”며 “손을 떨거나, 다리를 저는 것은 액션을 해야하기 때문에 개연성이 떨어져서 직관적으로 말을 더듬는 후유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영화를 내놓는 과정 중에서도 마약 범죄의 심각성을 피부로 체감했다. 강하늘은 “개봉을 앞두고 내레이션 부분의 후시녹음을 다시 해야 했다”면서 “처음 촬영할 때는 한 해 마약 범죄가 1만건 대였는데, 이번에 새로 통계가 나온 것이 2만 건을 훌쩍 넘어서 수정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배우 강하늘의 연기관에 따르면, 연기자(배우)는 재밌는 이야기를 살아움직여 보여주는 직업이다.
상업영화의 성공 공식, 즉 빠른 전개와 엎치락뒤치락하는 강약 구도, 통쾌한 인과응보의 결말을 그대로 채택하면서 ‘야당’은 무난히 재밌는 영화로 탄생했다.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고 ‘한 끗’이 달라진 건 생소한 직업 ‘야당’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 그리고 그 역할을 그간 선한 역을 주로 해온 강하늘이 맡으면서 의외성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연기자’란 직업은 왜 생겨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요. 세상엔 재밌는 글이 있고, 사람들이 이 글이 읽다 보니까 읽기만 해서는 조금 지루한 거죠. 그래서 그 이야기를 말로 들려주는 사람이 생겼고, 그게 더 발전해서 움직이면서 말하는 사람이 생겨났고요. 그래서 결국 ‘글로 쓰여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재밌게 표현’해 주는 게 연기자가 할 일인 거죠. 제가 이강수를 맛있게 표현했다면 전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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