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인공지능(AI)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인공지능(AI) 개발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 인간을 위한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디지스트) 의생명공학 전공 초빙 석좌교수로 임용된 데니스 노블(Denis Noble) 옥스퍼드대 심혈관 생리학 명예교수는 AI의 급격한 발전을 경계했다. 그는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막대한 실업을 초래할 것이고, 젊은 사람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AI와 인간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노블 교수는 1960년대 세계 최초로 가상 심장(Virtual Heart)을 개발해 현대 심장 전기생리학의 기초를 세운 생리학자이자 시스템 생물학의 선구자다.
시스템 생물학은 생명현상을 복합체로 규정하고 생물학뿐만 아니라 컴퓨터과학, 수학, 물리학, 화학 등의 원칙을 사용해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는 이처럼 생명과학과 철학의 접점을 찾아 새로운 치유 가능성을 발견해 우리나라와도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이어왔다. 최근 10년 동안 2017년, 2019년과 2024년에 방한해 불교 철학과 생명과학의 융합을 논의했고 우리나라 과학계와 학문적 교류를 이어갔다. 최근까지 원효 대사의 화쟁 사상과 황진이의 시 등을 주로 연구해온 독특한 학자다.
제작진은 특히 우리나라의 불교적 세계관이 그의 시스템 생물학 연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2024년에는 그와 제자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가 해인사를 찾아 그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내면으로 성찰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MBC 부처님 오신날 특집 '오래된 질문')가 방영되기도 했다.
이처럼 노블 교수는 아흔을 앞둔 고령에도 생명과 기술, 철학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그는 또한 영국기사단(CBE·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기사단 훈장 중 하나로 영국의 이익에 공헌하거나 경제·문화·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크게 활약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과 영국왕립학회(FRS) 회원이다. 국제생리학연맹(IUPS) 세계회의 의장(1993년)과 사무총장(1993∼2001년)도 역임했다.
국내에도 출간된 그의 저서 '생명의 음악'(The Music of Life)을 통해서는 생명체를 세포, 조직, 환경 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는 통찰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통찰이 한국 불교의 가르침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최근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열린 세계적 베스트셀러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의 학문적 논쟁에서 유전자 중심주의를 반박하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 학계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생명체를 유전자, 세포, 환경 간의 상호작용으로 분석하고 여기에 컴퓨터 과학을 접목한 그의 연구는 오늘날 AI 기반 생명과학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받는다.
다음은 노블 교수와의 일문일답.
-- 교수님이 오랫동안 출연했던 한국인 김성희 대표가 이끄는 보이스 프럼 옥스퍼드의 옥스퍼드대 지식 프로그램 '티 톡스'(T-Talks)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이 프로그램이 계속되고 있나? ▲ 물론이다. 옥스퍼드대학 내에서도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의 목표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이름 그대로 '티 타임 토크'(Tea Time Talks)다. 서로 지지하며 경청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게 된다. 모두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취지다.
-- 요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나 고민은 무엇인가? ▲ 현재 사회가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는 데 전념하고 있다. 지난 60년 동안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잘못 이해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생리학자로서 발견한 것은 '우리의 유전자가 우리를 이기적이거나 협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지난 10여 년 동안 생물학이 왜 이렇게 근본적으로 변화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 그동안 연구해온 시스템 생물학의 핵심은? ▲ 생물학자들은 유전자가 단순히 단백질을 만들고, 그 단백질이 우리를 형성한다는 기존의 개념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게다가 이 복잡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며, 유전자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인간 행동에선 자신의 판단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대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 우리나라 청년에게도 여러 차례 이 내용을 전한 걸로 알고 있다. ▲ 지금 한국 청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도 이 메시지를 전파하고, 그 배경이 되는 생물학적 원리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한국은 현재 매우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강조하셨던 유전자를 뛰어넘은 '협력'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신경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상호작용이 우리에게 '나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 나온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다.' 그 인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오늘날 많은 젊은이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사회 속에서 거의 버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으며,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 최근 '이기적 유전자' 저자 도킨스 교수와 생산적 논쟁을 벌인 영상이 매우 화제다. 교수님이 생각과는 무엇이 다른가. ▲ 한국에서도 많은 청년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읽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책은 유전자가 우리를 몸과 정신으로 창조했다고 말한다. 도킨스는 책에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필요(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했다.
-- 도킨스 교수가 책에 언급한 내용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은 무엇인가. ▲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은 명확하다. 만약 어떤 순간에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가장 좋은 사과를 가져가고, 나중에는 아주 관대해져서 가장 좋은 사과를 남에게 주고 나는 가장 못 한 것을 가져간다면 내 유전자는 그대로다.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와 협력적으로 행동할 때, 내 유전자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도킨스도 내가 말한 이 내용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최근에 "나는 이 책의 제목을 협력하는 유전자라고 바꿀 수도 있었고, 그래도 책의 내용은 전혀 바꿀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책에 썼다.
-- 의미를 짚어준다면. ▲ 내 생각에 도킨스는 자신이 실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유전자가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협력적이라고 말하는 건가? 사실 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단하다. 그 생각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 책이 1976년에 출판됐으니, 이제 거의 50년이 된 셈이다. 즉, 우리가 약 60년 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생각이 더 이전에 나온 개념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즉, 유전자가 RNA를 만들고, RNA가 단백질을 만들고, 그 단백질이 우리를 만든다는 생각 말이다.
-- 이에 대한 결론의 형태로, 새로운 책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 오랫동안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30년 전, 내 연구팀이 심장을 연구하고 있을 때, 우리는 태아 발생의 가장 초기 단계부터 심장이 규칙적으로 박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박동은 신경계의 어떠한 지시도 없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는 신경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즉, 특정 유전자를 제거해도 심장의 리듬은 멈추지 않는다.
-- 결국, 중요한 것은 시스템인지. ▲ 유전자 네트워크의 95%가 이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나를 제거하면 다른 것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여러분은 비행기의 자동 조종 시스템에서 이런 실패 방지 시스템(Fail-Safe System)이 없이 비행기를 운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개념은 매우 간단하지 않나? 우리의 문제는 생물학을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책 'Understanding Living Systems'를 쓴 이유다. 우리는 살아 있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신의 목적을 찾고, 스스로 목적을 만들어가야 한다.
-- 새 책 'Understanding Living Systems'의 세부 내용을 소개한다면. ▲ DNA를 살펴보면, 그것은 일종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여기 C가 있고, 저기 T가 있고, 그다음에 G가 있으며, 그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마치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게 있을 것 같다. 많은 이가 유전체를 살펴보면서 프로그램상의 제어 프로세스 순서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제어 메커니즘은 유전체에서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이 책의 기본 메시지다. 제어 메커니즘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유전자를 통제하고, 유전자가 하는 일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할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 현대 사회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데 지속 가능하고 원활한 협력을 이루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 우리는 매우 똑똑한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는 시기에 직면해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보다 훨씬 똑똑하다. 하지만 목적이 없는 인공지능 개발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이러한 인공지능이 도입되는 시점에서 막대한 실업을 초래할 것이다. 청년에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다. 우리는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주 신중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제작총괄 : 홍제성, 프로듀서 : 신성헌, 구성 : 민지애, 진행·대담 : 유세진, 촬영 : 박소라·박주하, 웹기획 : 신성헌, 인터뷰 번역 : 유세진, 번역 감수 : 정주원, 취재 협조 : 디지스트, 인터뷰 코디네이션 : 김성희(보이스 프럼 옥스퍼드),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연출 : 박주하>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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