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 HL그룹 회장이 빙상 위에 선수들과 함께 서있다. 왼쪽부터 맷 달튼 선수, 이돈구 선수, 정 회장, 홍인화 여사 . [사진 HL그룹]
정몽원(69) HL그룹 회장은 아이스하키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귀인’이다. 1994년 HL 안양 아이스하키단을 창단해 30년간 구단주를 맡았고, 2013년부터 8년간 대한아이스하키 협회장을 지냈다. 최근 펴낸 에세이 제목을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로 정한 데는 그의 곡절이 녹아 있다. “1990년대 중반 캐나다 벨빌에서 피자배달원과 소방관으로 구성된 동호회팀에 크게 져서(1-8 대패)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한국 아이스하키대표팀은 2018년 세계선수권 톱디비전으로 승격해 세계 1위 캐나다 국가대표를 상대할 만큼 상전벽해했다.
그는 기업 총수라는 체면을 내려놓고 관중석에서 응원 율동까지 따라할 만큼 아이스하키에 진심이다. 정 회장은 중앙일보에 “아내는 ‘남들 보기에 이상하다’고 말렸지만 선수와 한 마음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며 웃었다. TBC 아나운서였던 아내 홍인화 여사도 아이스하키에 열정적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 남북단일팀 결성도 이끌어냈다. 정 회장 특유의 뚝심이 묻어난 결과였다. 그는 “북측이 협상 끝에 경기당 3명씩만 알아서 내보내라고 했다. 북한 선수 12명이 스틱 한 자루, 스케이트 한 켤레도 안 가지고 빈손으로 내려와 당황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 업체들이 장비를 못 보내줬다”며 “아이스하키 장비는 길들이는데 시간이 걸리고 발도 아플텐데도 북측 선수들이 너무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올림픽이 끝난 뒤 북측 선수단과 회식도 했는데, 당시 ‘만남’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고도 전했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아이스하키에 열광할까. 그는 “아이스하키는 과감하게 룰을 변경하고 스피드가 빠른 종목”이라며 “요즘 같은 예측불허 시대에 기업도 고객 대응·제품 개발·의사결정까지 ‘빨리빨리’ 기민하게 움직이고 선택과 집중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