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이폰 생산지 美 이전 언급
레빗 대변인 "노동력, 자원 모두 충분"
전문가들 "현실적으로 불가능" 지적
스티브 잡스도 생전 美 생산에 부정적
아이폰 美 생산 땐 가격 3500달러 예상
애플 뉴욕 매장. 사진=애플 제공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상호관세 발효에 맞춰 본색을 드러냈다. 애플이 미국에서 충분히 아이폰을 생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흘리면서 '생산기지 이전'을 선택지로 언급한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판매가는 35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520만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9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상호관세 발효 전날 아이폰 생산기지 이전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미국이 스마트폰을 생산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레빗 대변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제조업 일자리를 가져오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국내에서 스마트폰을 제조할 노동력·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노동력과 자원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며 "애플은 미국에 5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애플이 미국에서의 제조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 금액을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앞서 미국에 향후 4년간 500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이는 인공지능(AI)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것으로, 제조 투자와는 거리가 있다.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 아이폰 가격은 최상급 플래그십인 아이폰16 프로 맥스 1TB 모델을 기준으로 2300달러(약 341만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제품 판매가는 현재 1599달러(약 237만원). 로젠블래트증권 분석가들은 아이폰 가격이 최대 43% 인상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하게 될 경우 이보다 훨씬 더 큰 폭의 가격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웨드부시의 분석가 댄 아이브스는 아이폰이 미국에서 생산되면 가격이 3500달러(약 52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니덤의 로라 마틴 애널리스트는 아이폰 생산기지 이전 가능성에 관해 "현실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앞서 상호관세가 미국 내에 스마트폰 생산기지를 구축하라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은 가능성이 낮지만 자국 기업에 우호적인 미국 정부가 애플만 관세를 면제할 경우 삼성전자를 향한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다.
이규희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향후 미국 기업에 수혜적인 관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한국 기업의 생산지 이전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아이폰16 시리즈. 사진=애플 제공
현시점에선 애플이 받는 타격이 더 큰 상황. 애플은 아이폰 전체 생산량 중 9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중국은 기존에 부과된 관세 20%에 상호관세 34%를 추가로 적용받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를 다시 84%로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최종 관세율은 104%로 뛰었고 이날 관세가 발효됐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선 아이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기존 54% 관세가 적용됐을 당시를 기준으로 해도 모델별로 대당 30~40%대 가격 인상이 예상됐던 만큼 인상폭은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상호관세 발효 전 아이폰을 사려는 고객들이 애플 매장으로 몰리는 현상이 포착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현지시간) 연말 분위기와 비슷할 정도로 매장에 고객들이 붐볐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애플 직원은 이 매체를 통해 "거의 모든 고객이 가격이 곧 오르는 것인지 물어봤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이 미국으로 들여오는 아이폰 물량 중 일부를 인도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폰은 애플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핵심 제품이어서 가격 인상에 따라 판매량이 감소할 경우 실적이 고꾸라질 수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그간 미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는 데 회의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나타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생전에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에 따르면 잡스는 2010년과 2011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회의에서 아이폰 생산기지를 이전할 수 없는 이유를 거듭 설명했다.
그는 애플이 중국에서 7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에 필적할 노동력을 지원하려면 숙련 엔지니어 3만명이 현장에 투입되어야 한다면서 "미국에선 그만큼의 인원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쿡 CEO도 같은 이유로 한 포럼에서 미국 내 아이폰 생산이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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