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득 세브란스병원 교수
더스탠다드와 공동 개발
암환자 생존 9개월 늘려
김만득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가 췌장암 환자를 전기기기로 치료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세브란스병원 의료진과 국내 의료기기업체가 협력해 고전압 암 치료기기를 국산화했다. 국제 학술대회를 통해 췌장암 환자 생존 기간 연장 성과까지 발표하는 등 시장 확대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김만득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9일 “더스탠다드와 함께 개발한 전기치료기기로 췌장암 환자를 치료해 생존 기간을 최대 9개월가량 연장했다”고 밝혔다. 주변 혈관이나 장기까지 전이된 국소 진행성 췌장암은 항암 치료를 받아도 평균 생존 기간이 진단 후 6~11개월에 불과하다. 김 교수팀은 지난달 30일 미국 내슈빌에서 열린 인터벤션영상의학회(SIR)에서 새 전기치료 시스템(EPO-IRE system)을 활용하면 생존율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암 조직에 2000~3000V 전압을 가하면 세포막에 나노미터(㎚) 사이즈의 미세 구멍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암세포는 자연사한다. 숨어있던 암세포가 노출돼 면역계가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바뀌기도 한다. 더스탠다드는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이런 전기치료를 위한 기기 제조 허가를 받았다. 미국 엔지오다이내믹스가 출시한 나노나이프가 독점하던 시장에 두 번째 제품을 선보인 것이다. 하지만 초기 모델은 의료 현장에서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김 교수팀은 2021년께부터 기기 고도화 작업에 참여했고 의사들이 쉽게 쓸 수 있도록 수차례 업그레이드했다.
이번 학회 발표는 의료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제품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다. 나노나이프보다 저렴하고 의사 편의성도 높은 제품을 활용한 연구 성과를 공개하면서다. 기존 기기로 시술한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11~14개월이었는데 새 기기를 활용한 연구에선 환자가 평균 20.7개월 생존했다. 진단 후 평균 생존 기간은 기존 기기 17~27개월, 새 기기 43.9개월로 26개월 넘게 늘어났다. 김 교수는 “비가역적 전기천공법(IRE)을 활용해 수술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에게서 효과를 봤다”며 “기기 국산화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IRE는 주변 혈관을 거의 손상시키지 않고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없앨 수 있다. 혈관이 가까이 있는 췌장암 치료에 많이 활용하는 이유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새 기기로 치료받은 췌장암 환자 중 한 명은 암이 사라져 1년 넘게 항암 치료 없이 추적 관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간암에도 전기 치료를 활용하고 있다. 해외에선 신장암 전립선암 등에도 많이 도입하는 추세다. 김 교수는 “국내 다른 병원 도입은 물론 수출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환자 치료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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