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클라우드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공연장 스피어에서 AI 기술로 구현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공개했다. 아래 사진은 1939년 개봉한 원작 영화 이미지. AI 영화가 원작보다 훨씬 선명하며, 원작의 프레임 바깥까지 영상으로 창조해냈다. 홍상지 기자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원형 공연장 스피어. 무대 화면 한가운데 조그맣게 85년 전 흑백 영화 ‘오즈의 마법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5초쯤 지나자 영상은 스피어 공연장을 상징하는 180도 고해상도 스크린에 넓게 펼쳐졌다. 주인공 도로시가 화면 속에서 부르고 있던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가 생생하게 울려 퍼지자, 관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 영상은 구글이 오즈의 마법사를 인공지능(AI) 기술로 새롭게 구현한 영상이다. AI 영상 제작에는 구글 클라우드와 구글 딥마인드, 스피어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 등이 참여했다. 구글 클라우드는 연례 기술 콘퍼런스인 ‘구글 클라우드 넥스트 2025’ 전야 행사에서 이 영상을 공개했다. 행사에 깜짝 등장한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영상을 소개하며 “AI는 모든 창의적 산업에서 인간의 독창성을 강화할 것이고,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영화 제작은 기술이 스스로 복제할 수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1939년 개봉한 원작 영화 이미지. [사진 유튜브 캡처]
구글은 1939년 작은 셀룰로이드 필름 프레임으로 찍힌 영화를 스피어의 초대형 고해상도(16K) LED 스크린에 맞출 수 있게끔 이미지를 바꿔주는 AI 기반 도구를 개발했다. 전통적인 영화 프레임보다 훨씬 넓은 스피어의 초대형 화면을 실감나게 채우기 위해 기존 영화 프레임 바깥에 있던 이미지도 동영상 AI 기술(AI 아웃페인팅)로 생성해 냈다. 실제로 스피어 화면에 펼쳐진 도로시와 양철 나무꾼 영상은 최신 영화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선명했고, 이질감도 없었다.
영상 제작을 위해 구글은 남아 있는 영상과 촬영 대본, 사진, 당시 세트 계획서, 악보 등 보충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이 자료들을 구글의 동영상 AI 도구인 비오(VEO)와 제미나이(Gemini)에 학습시켜 원작 캐릭터의 세부 사항, 특정 장면의 카메라 초점 거리 같은 제작 요소까지 훈련할 수 있게 했다.
구글은 AI 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만든 이 102분짜리 영화를 통해 워너브러더스 등 기존 영화 제작사와 협업 모델을 만들었다. AI와 창작자가 협업해 새로운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만드는 방향이다. 또 그 장소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초대형·초고해상도 원형 스크린을 지닌 스피어를 택했다. ‘어떤 환경에서건 고품질 AI 영상 생성이 가능해졌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날 토머스 쿠리언 구글 클라우드 CEO는 짐 돌런 스피어 엔터테인먼트 CEO와 제작 뒷이야기를 나누며 “이 무대(영상) 뒤에는 정말 많은 기술이 일어나고 있다. 활용한 AI 제작 모델만 스무 가지가 넘고, 이 모델을 실제 실행하고 미세 조정할 수 있게 해주는 AI 칩 TPU(텐서처리장치) 기술까지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돌런 CEO는 “지금 이 대담 무대 위에는 AI를 위한 세 번째 의자가 있어야 한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AI가 ‘핵심 제작 멤버’로 참여한 오즈의 마법사는 오는 8월 28일 스피어에서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앞으로 동영상·이미지·음악 등 예술 분야 생성 AI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인간 창작자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예술 분야에서 인간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복제도 손쉽게 해내는 AI가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최근 오픈AI는 지브리 스튜디오풍 이미지 생성 AI 기능으로 대중의 환호를 끌어냈지만, 모델 학습 과정에서 지브리와 사전 논의가 없던 점이 알려져 비판을 받고 있다. 구글은 일단 오픈AI의 행보와는 선을 그으며 아티스트와 ‘상생모델’을 택했다. 다만 업계에선 이보다 더 기술이 발전한 이후에도 인간 창작자의 자리가 존재하고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은 남아 있다.
라스베이거스(미국)=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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