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구진, 바다 위 은하수 ‘우윳빛 바다’ 현상 추적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쥘 베른 ‘해저 2만리’ 소재
선원의 증언과 항해 기록, 위성 자료 수집
박테리아, 해양 조류와 반응...기후 영향 추적
미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은 9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지구와 우주 과학(Earth and Space Science)에 밤에 바닷물이 하얗게 빛나는 ‘우윳빛 바다 현상’이 발생하는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 지난 400년간의 해양 관측 자료를 이용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고 밝혔다. /
수 세기에 걸쳐 뱃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떠도는 신비한 현상이 있다. 달빛 하나 없는 컴컴한 밤에 바닷물이 하얗게 빛나며 마치 은하수 위에 배가 떠 있는 착각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나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선원들과 과학자들은 이 현상이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Milky way·밀키웨이)처럼 보인다며 ‘밀키시즈(Milky seas·우윳빛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이 현상을 뜻하는 우리말은 없다.
무려 10만㎢에 이르는 넓은 바다 공간에 펼쳐진 빛은 우주에서도 포착된다. 미국의 과학자들이 400년 가까이 선원들과 과학자, 인공위성이 남긴 정보를 활용해 좀처럼 관찰하기 어려운 바다의 발광 현상을 추적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은 바닷물 발광 현상
밤에 바닷물이 하얗게 빛나는 ‘우윳빛 바다’ 현상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나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처럼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가 된다. 무려 10만㎢에 이르는 넓은 바다 공간에 펼쳐진 빛은 우주에서도 보인다. /20세기 폭스
미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은 9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지구와 우주 과학(Earth and Space Science)에 밤에 바닷물이 하얗게 빛나는 ‘우윳빛 바다’ 현상이 발생하는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 지난 400년간 선원들의 증언과 항해 기록, 30년간의 위성 관측 자료를 이용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고 밝혔다.
우윳빛 바다는 박테리아 같은 바닷속 생물이 밤에 바다 표면에서 광범위하게 빛을 내는 일종의 생물 발광 현상이다. 빛은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고,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이 희귀한 현상은 수 세기 동안 먼 바닷길을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목격됐지만 주로 입소문으로만 보고됐다. 지금도 매우 드물게 관찰되기 때문에 정확한 발생 원인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우윳빛 바다 현상은 대부분 인간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인도양의 외딴 해역에서 목격됐다. 발생 빈도도 1년에 1~2회에 그친다.
연구진은 400년간 보고된 선원의 목격담 235건과 지난 80년간 학술지인 해양관측저널(Marine Observer Journal)에 제출된 증언, 최근 30년간 수집한 인공위성 데이터로 대규모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이들 자료를 종합한 결과 우윳빛 바다는 주로 아라비아해와 동남아시아 해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이 현상이 가장 많이 보고된 해역은 소말리아와 예멘 남부 소코트라섬 부근의 인도양 북서부 해역이다. 지금까지 기록되거나 보고된 우윳빛 바다 현상의 60%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이 현상은 또 인도양 쌍극자와 엘니뇨 남방 진동과도 통계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인도양 쌍극자는 인도양의 동부와 서부 온도가 변하는 현상이다. 인도양 동부가 이상고온, 서부가 이상저온을 보이면 양의 값, 반대 조건이면 음의 값을 갖는다. ‘엘니뇨-남방진동(ENSO)‘은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평균보다 높은 상태인 엘니뇨와 낮은 상태인 라니냐 사이의 순환을 말한다. 두 기후 현상은 모두 지구 기상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문의 제1 저자인 저스틴 허드슨 연구원은 “인도양 몬순의 주기가 바람 패턴과 해류의 변화를 통해 이 지역의 생물 활동을 촉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도양과 아라비아해 미스터리한 현상
지난 1985년 7월 미국 연구진은 아라비아해에서 생물 발광 현상을 발견하고 표본을 채취했다. 연구진은 표본에서 비브리오 하베이(Vibrio harveyi)라는 박테리아를 발견하고 이들이 번성하는 해조류에 붙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S. Haddock·MBARI
생물 발광은 바다가 아닌 다른 자연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반딧불이의 깜빡이는 꼬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바다에서도 종종 녹색 형광 현상이 관찰된다. 연구자들은 하얀빛을 띠는 우윳빛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체적으로 수집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허드슨 연구원은 “지금까지 우윳빛 바다를 촬영한 사진은 2019년 요트가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밖에 없었다”며 “이런 현상이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85년 7월 미국 연구진은 아라비아해에서 생물 발광 현상을 발견하고 표본을 채취했다. 연구진은 표본에서 비브리오 하베이(Vibrio harveyi)라는 박테리아를 발견하고 이들이 번성하는 해조류에 붙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학자들은 이 미생물이 특정한 조류와 식물성 플랑크톤 군집과 만났을 때 자극을 받아 빛을 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결과가 단지 하나의 데이터에 불과하며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학자들은 기후가 우윳빛 바다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추적하고 있다. 생물 발광 현상과 광범위한 지구 시스템 활동을 연결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허드슨 연구원은 “이 데이터베이스가 향후 과학자들이 우윳빛 바다 현상이 언제 어디에서 발생할지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적시에 연구선을 현장에 투입해서 우윳빛 바다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화학적 작용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최근 부족한 정보의 틈을 메우기 위해 인공위성이 수집한 정보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스티븐 밀러 교수 연구진도 20년 넘게 위성을 이용해 우윳빛 바다 현상을 포착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연구진은 지난 1995년 영국 상선 리마호가 소말리아 해안에서 인도양 북서쪽으로 이동하다가 우연히 우윳빛 바다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보고 연구에 착수했다. 2000년대 초 미 해군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밀러 교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미 해양대기청(NOAA)이 개발하던 가시광선 적외선 영상복사계(VIIRS)로 바다에서 발생하는 발광 현상을 포착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2005년 미 국방부 위성으로 인도양 북서부의 약 1만5400㎢에 이르는 면적에서 3일 연속으로 빛나는 현상을 관측했다고 보고했다. 인공위성으로 우윳빛 바다 현상을 포착한 건 처음이다. 연구진은 2021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의 수오미NPP 위성이 촬영한 정보를 바탕으로 인도양과 서태평양 전역에 걸쳐 12건의 발광 현상을 발견했다고 소개했다.
400년간 선원 증언, 항해 기록, 위성 자료 모아 추적
스티븐 밀러 콜로라도주립대 교수 연구진은 2019년 국제 학술지 미과학원회보(PNAS)에 슈퍼요트 가네샤의 선원들이 2019년 인도네시아 자바섬 인근에서 발견한 사진을 토대로 인공위성을 이용해 약 10만㎢에 이르는 우윳빛 바다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PNAS
연구진은 위성이 포착한 정보가 우윳빛 바다에 관한 더 다양한 지식을 얻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밀러 교수는 “우윳빛 바다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현상이지만 여전히 역할은 규명되지 않았다”며 “땅과 하늘을 포함한 지구 시스템에서 박테리아처럼 작은 미생물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과 연관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우윳빛 바다가 생태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바다에서 발견되는 발광 현상은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반대로 생태계가 파괴된 징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우윳빛 바다에서 빛을 내는 박테리아는 어류와 갑각류에 해롭다고 분류되고 있다.
연구진은 우윳빛 바다가 지구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탄소와 영양소 순환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육지와 바다에서 탄소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박테리아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진전되면서 점점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우윳빛 바다 현상이 보고된 해역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어업 활동이 활발한 지역과 겹친다. 연구진은 “17세기 선박부터 현대의 위성이 수집한 정보를 활용해 뱃사람들의 이야기와 과학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며 “우연히 우윳빛 바다와 마주치길 기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답을 얻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밤에 밝게 빛나는 바다의 지리적 분포. 위도와 경도를 각각 15도씩 나눠 관찰 횟수에 따라 음영을 나타냈다(위). 연구진은 또 관측에 적합한 세 곳의 주요 핫스팟(아래 그림 검은색 상자)을 표시했다. /미 콜로라도주립대
참고 자료
Earth and Space Science(2025), DOI : https://doi.org/10.1029/2024EA004082
Journal of Experimental Marine Biology and Ecology(1988), DOI : https://doi.org/10.1016/0022-0981(88)90152-9
Scientific Reports(2021), DOI : https://doi.org/10.1038/s41598-021-9482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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