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발의안 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 분리
“시너지 사라질 것” vs. “인사적체 해소”
기획예산처 총리실? 대통령실? 의견 분분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가 안개에 휩싸여 있다. [뉴시스]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썰’로만 떠돌던 ‘기획재정부 쪼개기’가 구체적인 법률안으로 등장하면서 관가가 또 한 번 술렁이고 있습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야당에서 나온 법안이 대선공약으로 이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 개편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 때문입니다. 그간 기재부 개혁론이 제기된 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조직 내에서도 긴장감이 감도는 모습입니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도봉구을)이 발의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기재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합니다.
세부적으로 현재 기재부의 예산 기능을 국무총리 소속 기획예산처로 이관하고, 기존 기재부는 재정경제부로 명칭을 변경해 나머지 업무를 수행하게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 정부조직 모델로 다시 돌려놓겠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기재부 체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조직법 개편을 통해 마련됐습니다. 재정경제부가 담당하던 경제정책 수립, 조세 및 국제금융정책 기능에 기획예산처의 예산 편성 및 공공기관 성과관리, 국무조정실의 경제정책 조정 기능까지 더해진 ‘매머드급’ 조직이 탄생한 겁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재부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면서 기재부의 권한은 더욱 강화됐습니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뉴시스]
국가의 핵심 기능을 총괄하는 현 구조는 ‘옥상옥’이라는 비판과 함께 꾸준히 권한 축소의 대상으로 지목돼 왔습니다. 윤석열 정부 때는 세수 결손에도 추가경정예산 없이 기금 재원으로 부족분을 메우는 방식이 논란이 되며 기재부 권한 축소론이 다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법안을 발의한 오 의원은 “기금 돌려막기는 국가재정법, 공적자금상환기금법, 교통시설특별회계법,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관한특별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며 “기재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쪼개기’에 대한 기재부 내 반응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우선 업무 측면에서 시너지를 잃고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한 기재부 직원은 “재정경제부로서는 쓸 수 있는 툴(예산)이 하나 사라지는 것”이라며 “업무를 추진할 때 예전만큼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 국장급은 “부처가 분리된다는 건 새 단장을 위한 비용 투입은 기본, 부처 간 의견 조율에도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든다는 의미”라며 “그보다는 예산 편성 과정을 손질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일반 직원들 사이에서는 인사 적체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미묘한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조직이 분할되면 새로운 보직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기재부는 정부 부처 중에서도 승진이 가장 느린 부처로도 유명합니다. 다른 부처의 국장급 행정고시 기수들이 기재부에서는 과장 보직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이런 인사 적체 현상이 공직 이탈 가속화에도 한몫하는 것으로 내부에서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재부의 한 직원은 “부처가 2개로 쪼개지면 장·차관 자리를 비롯해 지원조직도 2개가 더 생기는 것”이라며 “인사 적체 측면에서는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예산·세제 등 특정 부서보다 지원 조직을 가고 싶어하는 직원들이 많았는데, 적어도 조직이 분할될 때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관가에서는 기획예산처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는 방안을 두고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통상 국무조정실장은 기재부 출신 인사가 맡는데, 이를 바탕으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가 다시 연결고리를 형성하면 조직 분할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일각에선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실 직속으로 두는 게 독립성과 실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대통령실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세종백블]은 세종 상주 기자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에 대한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은 물론, 정책의 행간에 담긴 의미, 관가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연재물입니다.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무원들의 소소한 소식까지 전함으로써 독자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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