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석학 조재필 에스엠랩 대표
UNIST 교수직 내려놓고 양극재 업체 창업
“국가전략기술 갖고도 지원 사업서 탈락
창업 순간만 지원, 상장하기까지 지원 부재”
국내 대표적인 이차전지 연구자의 성을 따서 부르는 ‘조선최강’이라는 말이 있다. 조재필 에스엠랩 대표와 선양국 한양대 교수, 최장욱·강기석 서울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모두 글로벌 학술기관 클래리베이트가 논문 피인용 횟수가 상위 0.1%에 들어간다고 선정한 세계적인 연구자들이다.
조재필 에스엠랩 대표는 조선최강 중 유일하게 교수를 그만두고 창업했다. 그는 지난 11일 울산 울주군 가천공단에 본사에서 만나 “아쉽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휴직을 하라며 만류했지만, 사업에 매진해서 끝장을 보려면 집중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2018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신분으로 에스엠랩을 창업했다. 교수들은 대부분 창업할 때 휴직해 돌아갈 길을 남겨두지만, 그는 작년 6월 회사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에 사표를 냈다.
조재필 에스엠랩 대표는 정부의 딥테크 지원이 앞단에만 몰려 있어 업력이 몇 년 된 기업은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조선비즈
에스엠랩은 조 대표가 교수 시절부터 연구해온 이차전지용 단결정 양극재 소재를 만든다. 이차전지는 충·방전이 자유로운 전지다. 이를 테면 리튬전지는 음극에 저장된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전자의 이동을 가져와 전류를 만든다. 충전하면 양국의 리튬이온이 다시 음극으로 돌아가 전자와 결합한다. 따라서 양극재는 이차전지의 용량과 출력, 수명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조 대표는 “단결정 양극재 소재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엠랩은 2023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한 국가첨단전략기술 보유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의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제도인데, 선정 기업 9곳 중에스엠랩을 제외하면 모두 주식시장에 상장한 대기업들이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에스엠랩도 창업의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스밸리는 창업한 지 3~7년쯤 되는 기업이 사업화 과정에서 자금조달이나 시장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를 말한다.
에스엠랩은 누적 투자 유치액만 2000억원을 넘겼다. 하지만 지난해 전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이차전지 업계 전반이 침체에 빠졌고, 에스엠랩의 관계회사인 금양이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에스엠랩은 지난해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했지만, 한국거래소가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에스엠랩 사옥 앞에는 건설을 하다 멈춘 3공장 건물이 있었다.
조 대표는 새로운 납품처를 찾기 위해 해외 배터리 업체들과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 2공장을 합쳐서 생산 가능 물량이 1만t 정도인데, 이 규모로는 국내 배터리 업체에 납품하기 힘들어 해외 중소형 배터리사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대만을 비롯해 해외 고객사 10여 곳에 샘플을 보내 검증을 진행하고 있고, 매출이 확보되면 2027년에 다시 상장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정부의 기술사업화 전략이나 딥테크 기업에 대한 지원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과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한 ’2025년 국가첨단전략산업 기술혁신 융자사업’에 탈락한 일화를 꺼냈다. 이 사업은 관련 분야 기업에 저리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업당 최대 50억원까지 융자를 받을 수 있어 에스엠랩처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꼭 필요한 지원사업이다.
조재필(맨 오른쪽) 에스엠랩 대표는 이차전지 양극재 소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2018년 보유 기술을 가지고 에스엠랩을 창업했고, 작년 6월 다니던 울산과학기술원(UNIST)을 나와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은 조 대표가 UNIST 교수 시절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UNIST
하지만 에스엠랩은 이 사업 지원대상에 선정되지 못했다. 국가첨단전략기술 보유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기술력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았지만 단 하나 ‘신용도’가 문제였다. 조 대표는 “스타트업은 실제 매출이 발생하고 이익을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신용도가 낮다고 제외하면 어디에서 도움을 받으라는 건지 의문”이라며 “담당자에게 하소연했지만 규정상 신용도가 낮으면 지원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첨단전략기술 보유 기업으로 지정했으면 기술이 실제로 쓰일 수 있게 보호하고 육성해야 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조 대표는 “법인세를 감면해주겠다고 하는데, 어차피 웬만한 스타트업은 적자여서 애초에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연구 인력을 구하기 힘든 문제도 여전하다. 조 대표는 교수 시절 창업할 때만 해도 대학에서 인력을 충분히 채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조 대표는 “교수가 창업한 회사인데도 UNIST 학생들을 데려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며 “우리 회사에 제자가 4명 있는데, 그나마 다른 기업들에 비하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기업 지원이 창업하는 순간에만 너무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상장하기 전에 데스밸리에 접어든 기업에는 이렇다 할 지원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국가 지원이 앞단에만 몰려 있고, 그 이후에 제대로 된 지원을 받으려면 상장 이후에나 가능하다”며 “초기 지원이 끝난 이후에는 딥테크 기업들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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