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영웅 클래스2'
#. 드라마 '약한영웅 클래스2'가 오는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약한영웅' 시즌1은 2022년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가 제작해 신예 배우들의 열연과 높은 완성도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후속 시즌은 더 이상 웨이브 작품이 아니다. 누적된 적자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웨이브 대신 넷플릭스가 제작과 공개를 맡았다.
'약한영웅'은 K콘텐츠의 경쟁력과 국내 유통망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사례다. 국내 OTT가 키운 지식재산(IP)이 글로벌 플랫폼의 오리지널로 재탄생하며, 성과가 해외로 이전되는 셈이다. 단순히 '팔 수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노력에서 지속적으로 '보낼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를 실현 가능한 구조로 발전시키기 위한 실험도 산업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웹툰은 있고, 영상은 없다”...유통 자립도 격차
하이브의 팬 플랫폼 '위버스'는 공연 스트리밍과 커머스, 팬 커뮤니티를 통합해 콘텐츠를 직접 유통·소비할 수 있는 독자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베리즈'를 출시하며 팬덤 기반 유통 플랫폼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웹툰 업계는 이미 네이버웹툰·카카오페이지 등 자체 플랫폼을 기반으로 유통망을 내재화하고 있다.
글로벌 서비스, 다국어 번역, 결제·구독 시스템, IP 2차 활용 인프라까지 아우르며, 국내 콘텐츠 산업 중에서는 드물게 제작부터 유통, 수익 회수까지 통합된 구조를 갖춘 대표 사례다. 미국, 일본, 동남아 등 주요 시장에서 자사 IP를 직접 유통하며 글로벌 유통 주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한 몇 안 되는 장르로 평가된다.
문제는 영상 콘텐츠 산업에는 독립 유통망 구축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국내 제작사는 글로벌 OTT에 제작비를 지원받는 대신, IP와 유통 권한을 플랫폼에 넘기고, 콘텐츠 성과와 무관하게 수익과 브랜드 가치까지 귀속되는 구조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국산 유통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려는 시도와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K콘텐츠 유통, 이제는 '설계의 시대'
영상 콘텐츠 유통 분야에서도 자립형 파이프라인을 모색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뉴아이디는 글로벌 스마트TV에 탑재되는 광고기반스트리밍(FAST) 플랫폼을 운영 중이며, LG유플러스는 올해부터 한국프로야구(KBO) 리그를 FAST 채널로 해외 송출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유통 실험에 나선 것이다. 본류 유통망을 대체하긴 이르지만, FAST라는 새로운 유통 경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공 차원의 유통망 확충 전략도 병행되고 있다. 정부도 국내 OTT와 FAST 중심의 글로벌 플랫폼을 육성하기 위해 민관 협력 기반의 콘텐츠 유통 생태계 조성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23일 '글로벌 K-FAST 얼라이언스'를 발족한다. 방송사, 콘텐츠 기업, 통신사, TV 제조사, 애드테크 기업 등으로 구성된 이 민관 연합체는 글로벌 유통망 구축과 투자 유치 협력을 공동 설계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해외 OTT·통신사와의 협업 지원과 글로벌 유통 테스트베드 제공 등 실질적 지원도 강화한다.
글로벌 OTT와의 협업 방식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제작사 '스튜디오 잔치'는 한국콘텐츠진흥원 '글로벌 OTT 플랫폼 연계형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 BBC 스튜디오와 다큐멘터리 '열두 바다'(가제)를 공동 기획했다. BBC 플랫폼 방영을 전제로 제작 중이며, 기획-제작-유통이 연결된 협업 구조의 실질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략적 유통 설계와 IP 확장성을 고려한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지금은 콘텐츠만 잘 만들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며 “미디어믹스 전략을 바탕으로 유통 경로와 파트너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유통 구조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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