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대내외 변수로 인해 과거 IMF 시기 이상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점이다. 나라 전체가 위기를 느낀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한동안 멈춰 있었다.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아 정치·행정이 공전했고,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위기에 대응하는 혁신정책 마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장 구자균)가 16일 정부 R&D 정책에 대한 산업계 요구를 담은 '2025 산업기술혁신 정책 건의'를 내놓았다.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와 정치권에 현장 목소리를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기협은 현재 위기를 돌파할 수단은 기술혁신뿐이며, 기업 연구개발(R&D)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기협은 우리나라가 직면한 위기에 대응하려면 기술혁신이 절실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장, 즉 기업 수요를 반영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정책 건의를 마련했다. 공급자 위주가 아닌 수요자 중심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R&D 지원은 기본(BASIC)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 'GO, B.A.S.I.C'을 슬로건으로 삼았다. R&D를 △확장(Boost) △고도화(Advance) △강화(Strengthen) △혁신(Innovate) △연결(Connect)해 혁신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의 총 14개 과제와 1개 긴급 현안을 담았다.
◇R&D·인프라 확장으로 기술혁신 '부스트'
산기협은 먼저 R&D 범위 및 대상, 인프라를 확장해 기술혁신을 보다 넓은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민간 부담을 줄이는 파격적인 '가변형 매칭펀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부분 정부 R&D 사업은 정부·민간 일률 비율로 사업비를 부담하는데, 기업 성장성이나 사안의 위험성 등 특성에 따라 정부 부담비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유연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외 우수 한국계 인재 국내 유입을 위한 'K-브레인 리턴 본부' 설치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로써 인재 발굴부터 연계, 활동 지원까지 종합 체계를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외국인 우수인력 유치, 정착을 유인할 수 있는 외국인 전용 R&D 인력매칭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체계적인 인재 유입 전략 수립을 주문했다.
◇시스템·제도 개선으로 R&D '고도화'
산기협은 이어 기존 시스템과 제도를 개선해 기술혁신 가속화를 유인하는 고도화 방안도 내놨다. 인력·세제·규제 개선 등 R&D 현장 애로사항을 민간 주도로 상시 발굴, 법·제도 설계에 반영하는 'R&D 제도개선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또 첨단기술 개발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R&D 주52시간제 적용 제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기술 개발에 나선다는 특수성을 반영, R&D 분야에서는 노사 합의를 전제로 자율적인 근로시간 관리가 가능하도록 근로기준법 내 예외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가전략기술 등 기술우위 확보가 시급한 기술이 시장에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패스트패스 샌드박스' 신설도 필요하다고 했다.
산업기술혁신 정책건의_GO B.A.S.I.C 주요 내용
◇역량 '강화'로 기술혁신 기반 마련
기업 R&D 분야 역량 내실화도 주요 과제로 들었다. 기술이 전에 없이 급격히 발전하는 반면 산업계 인력 부족은 심화되는 시기로, 이에 대응해 국가 차원 'R&D스킬랩'을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첨단바이오, 양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 관련 산업계 업스킬링(기술 향상), 리스킬링(신기술 교육)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부처별 파편화된 인력 제도와 지원사업을 통합·효율화하는 '(가칭)혁신인재본부' 신설안도 건의에 담았다. R&D 인재 총괄조직을 설치해 연구인재 육성에 힘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계 최대 이슈 중 하나인 글로벌 탄소 규제에 중소기업 대응이 더딘 것과 관련, '대·중소 기업 동반 탄소 감축 종합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관련 법·제도 정비는 물론이고 플랫폼 구축, 금융 및 세제 지원 등 전방위적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파괴적 접근으로 '혁신'
산기협은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급격한 발전, 치열한 세계 기술 경쟁이 이뤄지는 AI 분야가 특히 그렇다고 했다.
이와 관련, 'K-AI 챌린저' 등장을 촉진하는 육성 프로그램 추진을 제언했다. 국가 차원의 데이터, 투자, 인력 전폭 지원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타트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소기업 제조 부문 AI 도입·활용을 촉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 AI 패키지' 도입도 함께 제안했다. 컨설팅, 표준 구축, 레퍼런스 홍보, 인력 양성, 자금 지원 등을 패키지로 제공해 5.3%에 불과한 국내 중소 제조업 AI 도입률을 대폭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다양한 주체 간 '연결'로 기술혁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과 정부, 국회 등 기술협력 주체 간 연계도 촉구했다. 국가 빅 프로젝트 발굴·운영을 위한 '(가칭)산·학·연·관 거대혁신협의체' 구성안을 내놨다. 또 부처별 소관 법령에 따라 다른 국가전략기술 정의를 일원화해, 동일 기술에 일관된 정책이 적용되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기존 제도로 해결되지 않는 기업규제 문제는 국회 내 기업규제혁신 지원기구를 설치, 입법부 차원의 소통 창구를 만들어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산기협은 중소기업을 위한 긴급 현안으로, 정부와 국회가 추가경정예산안에 중소기업 R&D 긴급 지원 예산을 편성할 것을 건의했다. 통상환경 급변과 고환율·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 등으로 R&D 연속성 확보가 어려워 추경 지원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고서곤 산기협 상임부회장은 “과거 여러 번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의 기술혁신 노력 덕분”이라며 “경제발전 주역인 우리 기업이 R&D의 끈을 놓지 않도록 정부는 혁신적인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며, 국회와 함께 산업계와의 상시 소통을 강화하고 주요 정책과제 추진에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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