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규모 84% 사라져…에너지 산업은 붕괴
서방 경제제재 완화하지만 완전 해제는 아직

아흐마드 샤라아 시리아 과도정부 대통령이 15일 헌법 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중심가에 있는 현금인출기 앞에 사람들이 뱀처럼 긴 줄을 섰다. 현금을 뽑기 위해 몇시간 동안이나 기다리던 사람들의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있었다. 마침내 남자 두명이 싸우기 시작했다. 싸움 끝에 한 남자가 소리쳤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이틀 동안 아이들에게 먹일 것을 살 수 있는 현금이 없었다.”

최대 상업은행인 ‘시리아 상업은행’은 만성적인 현금 부족으로 현금인출기 앞에 이처럼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이달 초부터 한번에 인출할 수 있는 현금을 50만시리아파운드(약 38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현금 부족 현상은 여전하다. 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달 시리아 중앙은행은 현금이 부족해 러시아에서 신규 지폐를 조달했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지폐를 찍을 재료조차 구하기 어려워, 러시아에 손을 벌린 것이다. 섬유 제조 소매업을 하는 한 시민은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넣었다가 뺄 수 없을까 봐 돈을 넣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지난해 12월 반군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하이아트)을 이끈 아흐마드 샤라아가 바샤르 아사드 독재 정권을 축출하며 13년 내전을 끝냈을 때만 해도 시리아에 희망이 넘쳐났다. 임시 대통령에 오른 샤라아는 지난 13일 임시 헌법 격인 ‘헌법 선언’을 만들어 통치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길 바란다”며 시리아의 미래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내전이 끝나고 석달 뒤 사람들은 다시 낙담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새 정부에 가졌던 행복한 감정은 (새 정부도) 경제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점차 분노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내전 기간 시리아 경제 규모의 약 84%가 공중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규모로 따지면 약 8천억달러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유엔개발계획(올해 2월)과 세계은행(지난해 4~5월) 통계를 살펴보면, 시리아의 빈곤율은 내전 전과 비교해 3배 악화됐고, 이들 중 극심한 빈곤 상태에 놓인 이들은 6배나 증가했다. 실업률은 3배로 올랐고, 6~15살 아동의 절반 가까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주택의 3분의 1이 파괴되었거나 심각하게 손상되어 대피소 지원이 필요한 이들은 약 570만명으로 추산된다. 내전 기간 사망한 이들은 50만명에 육박했다. 유엔개발계획이 각국의 소득, 교육, 평균수명 등을 조사해 평가하는 인간개발지수(HDI)는 2010년 0.661이었으나 0.557로 감소했다. 이는 1990년대보다 후퇴한 수치다. 나라 전체가 약 30년이 후퇴한 셈이다.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고 쉽사리 말할 수 없다는 점은 더 암담하다. 현재 시리아 경제성장률(1% 미만)로는 시리아 경제는 2080년이 되어도 2011년 이전 국내총생산 규모를 회복할 수 없다. 유엔개발계획은 10년 내 시리아가 경제 재건에 성공하려면 연간 경제성장률이 현재 수준의 6배가 되어야 하며, 2011년 이전으로 경제를 회복하려면 15년 동안 현재 수준보다 10배 증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아힘 슈타이너 유엔개발계획 행정관은 “시리아가 회복되려면 즉각적인 인도적 지원 외에도 경제·사회적 안정을 구축하기 위한 개발에 대한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엔개발계획은 정부의 명확한 비전 제시와 심층 개혁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시리아의 경제가 몰락한 배경에는 내전과 함께 서방의 대규모 경제 제재가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아사드 독재 정권이 2011년 아랍의 봄 때 민주화 시위를 잔혹하게 유혈 진압하고 내전으로 이어지자 시리아 무역을 사실상 막는 수준의 강한 경제제재를 가했다.

제재로 시리아 국가 경제의 핵심이었던 에너지·전력 산업은 붕괴했다. 시리아의 석유 산업은 농업과 함께 국가 경제의 핵심이었다. 2010년 시리아의 원유 수출은 액수 기준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했고 90% 이상이 유럽으로 수출됐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당시 시리아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38만3천배럴이었다. 하루 수백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과 비교할 때 양은 적었지만 시리아에는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다. 하지만 기나긴 내전 뒤 현재 하루 5만배럴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마저 시리아 과도정부와 갈등하는 쿠르드족이 이끄는 시리아민주군(SDF)의 근거지인 북동부 지역이 주요 원유 생산 지역이다. 제재가 이어지는 사이 발전소와 송전선은 낙후돼 70% 넘게 손상되었다. 전력 생산 능력은 4분의 3 이상이 줄었다.

세계적인 석유 회사들도 시리아를 떠났다. 셸은 2011년 12월 시리아에 대한 국제적 경제제재를 준수한다는 이유로 시리아에서의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시기 토탈에너지도 시리아에서 모든 활동을 중단했고, 2019년 5월 다마스쿠스 사무소를 폐쇄했다. 2023년 토탈에너지 보고서를 보면 시리아에서는 제재 대상이 아닌 품목에 한해 소액 결제 정도만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탈에너지의 마케팅 자회사는 2023년 시리아에서 매출 2449유로(약 385만8864원), 순이익 293유로(약 46만1677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아사드 정권은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동맹국인 이란과 러시아의 음성적 경제 지원으로 버틸 수 있었으나 아사드 정권의 붕괴 이후 같은 지원을 이란과 러시아에 요구하기 어렵다. 또한 아사드 정권은 2020년대 초까지 마약 캡타곤의 최대 생산국으로 연간 약 60억달러(약 8조6천억원)를 벌어들였으나 정상국가를 표방하는 샤라아 정권이 마약 사업을 하기는 어렵다.

서방이 샤라아 정권 출범 뒤에도 제재를 대체로 유지하는 배경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결돼 있는 하이아트를 이끌었던 샤라아를 좀 더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샤라아 임시 대통령은 시리아 내전 때 알카에다 지부로 창립된 누스라전선의 지도자 출신이다. 미국은 그가 이끈 하이아트를 여전히 테러 단체로 지정해두고 있다. 미국은 샤라아 과도정부 출범 이후에도 과도정부가 얼마나 통합적 행보를 보이는지 지켜보겠다며 하이아트에 대한 테러 단체 지정을 해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방도 시리아 과도정부 붕괴를 포함한 혼란은 난민 문제 등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지난달 서부 해안 지역인 라타키야와 인근 타르투스 등에서 아사드 충성 무장 단체와 과도정부가 충돌하며 1400명 이상이 숨졌다고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밝혔다. 시리아 서부 해안 지대는 아사드 정권 지지 기반이었던 이슬람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 주민이 많이 사는 곳인데, 당시 무장 단체 대원도 아닌 민간인 알라위파 수백명이 숨졌다. 다민족·다종교 국가인 시리아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라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점진적으로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초 공공서비스 제공과 인도적 지원 등의 경우에 6개월 동안 제재를 완화했다. 유럽연합은 에너지, 운송, 재건 부문 제재를 유예하고 이와 관련한 금융, 은행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내용의 초안을 작성했다고 지난달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서방은 완전한 제재 해제에 대해서 아직 신중하다. 시리아가 오랜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빠른 경제 성장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점치기 어렵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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