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세계 행복보고서에 담긴 한국인 초상
주 4~5일 점심·저녁 혼밥…세계 16위
1인 가구와 고령층 크게 늘어난 때문
한국인의 혼밥 횟수가 세계 최상위권으로 나타났다. 한 젊은이가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한끼를 해결하고 있는 모습.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국은 소득 수준에 비해 행복 순위가 매우 낮게 나오는 나라다.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3월20일)을 맞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WHR)’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한국의 행복 순위는 전 세계 147개국 중 58위로, 지난해 52위에서 6계단이 밀려났다. 점수로는 6.038점(10점 만점)으로 지난해보다 0.02점 하락했다. 한국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베트남(46위), 타이(49위), 필리핀(57위)보다 순위가 낮다. 선진국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오는 것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보고서는 GDP(1인당 국내총생산), 건강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삶의 선택의 자유, 관대함, 부패 인식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해 각 나라의 행복도를 분석하지만, 행복 순위 자체는 사람들이 스스로 매긴 삶의 만족도 점수를 기반으로 매긴다. 올해의 순위는 2022~2024년 점수의 평균치다.
한국은 1인당 GDP에서 일본을 앞서고 건강 기대수명(4위)도 최상위권에 올랐다. 하지만 ‘삶의 선택의 자유'(102위),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85위), 관용(또는 기부)(84위)에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보잘것 없는 ‘외화내빈형’ 행복이다.
다른 사람과 자주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2025)
혼밥 횟수, 중남미·북미·서유럽의 2배
올해 보고서에는 이것 말고도 한국인 삶의 현주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초상이 담겨 있다.
우선 한국인은 세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혼자 식사하는, 이른바 ‘혼밥’ 횟수가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횟수가 일주일에 4.3회(저녁 1.6회, 점심 2.7회)에 그쳤다. 달리 말해 저녁은 7일 중 5일, 점심은 7일 중 4일 혼밥을 한다는 얘기다. 일주일 14끼 중 10끼가 혼밥이다. 2022∼2023년 갤럽이 조사한 142개국 중 127위에 해당한다. 혼밥 순위로 따지자면 세계 16위다.
혼밥을 즐겨먹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주당 3.7회)과 큰 차이가 없다. 함께하는 식사 횟수 1위를 기록한 세네갈(주당 11.7회)과는 거의 3배 차이다. 중남미(8.8회), 북미·서유럽(각 8.3회)과 비교해도 거의 2배 차이다.
보고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일본과 한국에서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그 원인을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1인 가구와 인구 고령화에서 찾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은 2000년 15.5%에서 2023년 35.5%로 높아졌다. 1인 가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고령층이다. 70대가 19%로 가장 높고 60대가 17%로 그 뒤를 잇는다. 혼밥 횟수가 젊은층보다 고령층에서 더 많은 것은 세계 공통 현상이다.
혼밥러 40% “외로움 느꼈다”
보고서는 “식사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소득이나 실업률과 같은 수준으로 주관적 웰빙 정도를 측정하는 매우 강력한 지표”라고 밝혔다. 다른 사람과 자주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함께하는 식사를 1회 늘리면 삶의 만족도 점수가 약 0.2점 느는 효과가 있다. 0.2점은 세계 행복 순위를 5단계 높일 만큼 유의미한 수치다. 점심과 저녁을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혼밥’ 하는 사람에 비해 삶의 만족도 점수가 1점이 더 높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가 1점 높아지면 행복 순위가 단숨에 세계 10위권으로 올라간다.
혼밥은 외로움과도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어제 외로움을 느꼈느냐는 질문에 혼밥을 하는 사람들은 약 40%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함께 식사하는 횟수가 주 12회를 넘는 사람은 “그렇다”는 응답이 20%가 되지 않았다.
한국은 이웃에게 발견될 경우 지갑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행복 순위(58위)와 같았다. 픽사베이
분실지갑 반환 기대율, 이웃이 낯선이보다 못해
분실된 지갑을 돌려받는 비율은 다른 사람들의 친절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행복도와 상관관계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분실물을 돌려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행복도를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북유럽 국가들은 잃어버린 지갑의 반환 예상 비율과 실제 반환율 모두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웃에게 발견될 경우 지갑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행복 순위(58위)와 같았다. 이는 낯선이(17위)나 경찰(23위)에게 발견될 경우 지갑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국민총행복전환포럼은 “이웃과의 관계나 신뢰에서 적신호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석했다.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의 친절함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여줬다”며 “실제로 분실된 지갑이 주인에게 반환되는 비율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약 2배 더 높았다”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절망사가 많이 늘어나는 나라다. 픽사베이
미국 다음으로 많이 늘어나는 ‘절망사’
한국에선 또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절망 속에서 죽음(절망사)’을 맞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망사란 주로 자살,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을 말한다.
절망사가 늘어난 나라 1위는 미국이었고, 한국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에서는 주로 30~59살 남성의 약물 중독사가 증가하는 반면, 한국에선 60살 이상 노인의 자살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절망사는 59개 표본국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보건기구의 2000~2019년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것이다.
8년 연속해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힌 핀란드도 절망사 수치는 한국과 비슷했다. 하지만 핀란드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한국과 핀란드가 다른 흐름을 보이는 것에 대해, 미국과 한국에서는 기부, 봉사 같은 사회친화적 행동(친절, 이타주의)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핀란드에서는 증가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사회친화적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10%포인트 증가하면 연간 10만명당 절망사가 약 1명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가 있다”고 밝혔다.
세계행복보고서 작성 주창자이 첫 보고서 작업을 주도했던 제프리 삭스 유엔지속가능개발솔루션네트워크 회장(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센터장)은 “올해 보고서는 행복이 신뢰, 친절, 사회적 연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줬다”며 “이제 이 사실을 행동으로 옮겨, 더 평화롭고 품위 있으며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혼자 식사를 할 때 거울을 통해 자신의 식사 모습을 보면 좀 더 맛있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고야대 제공
혼밥할 때 거울 보면 더 맛나게 느껴져요
경험상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면 혼자 먹을 때보다 더 많이 또는 맛나게 먹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혼자 식사할 경우, 식사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본 나고야대 심리학자들이 몇년 전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거울을 보면서 식사를 하면 음식이 좀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노인(65~74살) 16명을 모집해 이들에게 소금맛과 캐러멜맛 팝콘을 준 뒤 1분30초 동안 먹도록 했다. 한 번은 앞에 거울을 놓고, 또 한 번은 벽 모습만 나타나는 모니터를 앞에 놓고 두 맛의 팝콘을 번갈아 먹도록 했다. 그런 다음 맛있게 느낀 정도에 점수(6점 만점)를 매기고 먹은 양을 측정했다.
분석 결과 거울을 보면서 먹었을 때 팝콘을 더 맛있게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짠맛, 캐러멜맛 팝콘 모두 같은 결과였다. 먹은 양도 거울을 보면서 먹을 때 더 많았다.
연구진은 이어 12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거울 대신 자신의 먹는 모습이 담긴 화면을 보면서 먹는 실험을 실시했다. 그랬더니 이 경우에도 벽이 비치는 화면을 보면서 먹을 때보다 맛있게 느꼈고 양도 많았다.
연구진은 대학생(20~23살) 16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연구진은 “혼자 식사하는 것은 우울증, 식욕 부진과 관련이 있다”며 “식사 동반자가 없는 노인, 예컨대 아내나 남편을 사별한 노인들에게는 식사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2017년 국제학술지 ‘생리학 및 행동’(Physiology & Behavior)에 발표됐다.
*논문 정보
The “social” facilitation of eating without the presence of others: Self-reflection on eating makes food taste better and people eat more.
https://doi.org/10.1016/j.physbeh.2017.05.022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