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는 엄두도 못 내"…삷의 전부인 집과 마을 잃은 이재민
"복구 방향이라도 나왔으면…피해 신청 엄두도 안 나"
29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마을이 전부 불에 타 있다. [손형주 기자]
(안동=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아들아 TV 서랍장 아래에 둔 저금통 있더나. 집은 멀쩡하냐?"
"어머니 저금통은 있어요. 집은…."
대구에 사는 이모(55)씨와 그의 동생은 지난 25일 산불이 어머니가 사는 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를 덮치자 어머니를 대구로 모셔두고 대신 집 상태를 확인하러 29일 고향 마을을 찾았다.
마을로 들어서자 한숨 섞인 탄식이 나왔다.
멀쩡한 게 하나도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벽돌과 장독대만 남았다. 이웃집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전화가 걸려 와 집 상태를 상세히 물었지만, 아들은 말끝을 흐리며 괜찮다고 했다.
29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마을 한 주택에서 찾은 저금통. [손형주 기자]
이씨는 "지난 25일 산불이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을 때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구급차를 타고 힘겹게 대피하셨다"며 "대피소에서 눈물만 흘리셔서 대구 집으로 모셨는데 건강도 안 좋은 어머니가 너무 충격받으실까 봐 있는 그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씨 부모님이 사는 추목리는 경주이씨 집성촌인데 마을 전체가 불에 탔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합쳐 150여 채의 집이 있는데 아랫마을은 형체가 멀쩡한 집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은 집성촌 성격이 많이 옅어졌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 전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씨는 "아버님은 이 마을이 고향으로 아흔 가까이 계속 이곳에서 사셨다"며 "어머님과 아버님에게 이 마을과 집은 삶의 전부인데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다는 걸 알면 얼마나 상심이 크실지 상상이 안 간다"고 말했다.
임하면 다른 마을도 상황은 비슷했다.
비교적 인구가 밀집된 임하리에 있는 읍내 주변도 곳곳에 상가와 주택이 전소돼 있었다.
29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불탄 은행의 모습 [손형주]
은행도 반쯤 불에 타고 형체만 남은 상가 건물도 보였다.
전기와 통신 복구를 위해 작업자가 전선과 통신선을 옮기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의용소방대원이자 임하리 주민인 김모(51)씨는 "사람 안 죽었으면 다행이지"라며 애써 웃어 보였다.
비교적 피해가 덜한 주민들은 이웃을 걱정했다.
임하리 주민 이모(71)씨는 "물을 뿌려놓고 대피해 집이 그나마 많이 타지는 않았다"며 "아직 전화와 텔레비전이 안 나오지만, 이웃집은 전부 불에 탔는데 우린 피해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29일 오후 경북 안동시 임하면에서 한 작업자가 전기 복구 공사를 하고 있다. [손형주 기자]
산불 피해를 본 주민들은 피해가 너무 크고 넓어 복구는 엄두도 안 난다고 입을 모았다.
집 형체가 보존됐더라도 곳곳이 그을리고 부서져 집을 아예 허물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임하면 귀농인 이성용(61)씨는 "정치인들이 앞다퉈 내려와 지원하겠다고 목소리 높이는데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복구 방향이라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며 "지금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면사무소 가서 피해 신청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막막하기만 한 산불복구 (영덕=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28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에서 주민과 인부들이 포크레인 등을 이용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5.3.28 handbroth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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