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활용 위해 여러 정책 내놔
스웨덴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은 최근 조지아 출신의 세계적 패션 모델 ‘마틸다 그바를리아니’와 똑같이 생긴 가상의 ‘AI(인공지능) 쌍둥이’를 제작했다. 특유의 짧은 곱슬머리와 매끈한 피부 질감, 무심한 듯한 표정까지 AI로 정밀하게 구현해 냈다. H&M은 그바를리아니를 포함해 실제 모델 30명의 ‘AI 쌍둥이’를 만들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몸값 비싼 모델이 움직이지 않고도 지구 반대편에서 광고를 제작할 수 있다.
네덜란드 패션 모델인 질 코틀레브의 실제 사진(왼쪽)과, 인공지능(AI)으로 ‘쌍둥이 모델’을 구현한 사진. H&M의 캠페인 이미지로, “내가 나의 ‘디지털(AI) 쌍둥이’ 모델의 사용권을 갖는다”는 문구가 담겨 있다./H&M·더비즈니스오브패션
H&M은 ‘AI 모델’을 직접 만들었지만, 사용권은 모델에게 줬다. 모델이 자신의 분신처럼 활용하며 다른 브랜드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한 것이다. H&M은 “AI 쌍둥이 모델을 사용할 때도 실제 모델과 긴밀히 협의하고, 사용에 대한 대가도 정확히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비롯한 유통업계에서 최근 ‘AI 모델’ 사용이 본격화되고 있다. 인간 모델을 활용할 때보다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초상권(퍼블리시티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들도 마련되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AI 모델’ 정착을 위해 다양한 시도
패션업계에서 ‘AI 모델’ 고용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패션 기업뿐 아니라 국내 업체도 마찬가지다. 한섬이 최근 AI 모델로 만든 화보를 공개했고, CJ온스타일은 AI 모델들이 참가하는 가상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모델을 활용하면 인건비를 비롯해 헤어·메이크업, 장소 대여 등 각종 부대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는 “평균적으로 인간 모델은 시간당 최소 35달러를 요구하지만 AI 모델은 한 달에 29달러면 된다”고 전했다. 기업 입장에선 원하는 이미지와 콘셉트를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매번 논란도 있었다. 인간 모델을 본뜨거나, 실존 인물과 닮은 AI 모델이 초상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초상권은 사람의 이름과 외모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뜻한다. 패션 브랜드 휴고보스가 AI 모델을 활용했을 때 “실존 배우나 유명인과 닮았다”는 논란이 제기됐고, 2023년 리바이스가 인종·체형의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 AI 모델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도 유사한 비판이 나왔다.
최근 기업들은 논란을 피하면서도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H&M처럼 AI 모델 활용 과정에서 실제 모델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거나, 아예 닮은 사람이 없도록 완전한 허구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식이다. 루이비통 등을 소유한 세계 최대 패션 기업 LVMH는 AI 생성 모델·콘텐츠를 활용할 땐 당사자와 사용권을 의무적으로 계약하도록 했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카사블랑카는 AI 모델로만 의류 화보집을 만들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과 유사한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실존 인물과 닮았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AI 모델을 생성할 때 실존 인물과 유사도를 낮추기 위한 필터링 시스템을 도입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EU, 가상 이미지에 ‘AI 라벨’
‘AI 모델’이 대세가 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내년 8월 시행되는 ‘AI 법’에서 AI 이미지일 경우 반드시 ‘AI 라벨’을 붙이도록 했다. 초상권 침해 논란을 차단하고,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이다. AI 모델을 사용할 경우, 반드시 당사자 동의를 받도록 하는 법도 도입되고 있다. 미국 뉴욕주에선 오는 6월 AI 모델 사용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긴 ‘패션 노동자법’이 발효된다. 이 법은 “AI 사용에 대해 모델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AI 모델’의 안착을 위해 패션·모델 업계에선 AI 모델의 사용료 표준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모델들의 권한을 확대하고 사용료를 지불한다고 해도, 공정한 보상 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만들어진 가상 이미지임을 명시하는 ‘AI 라벨’ 역시 소비자 눈에 띄지 않거나, 편집돼 실질적으로 소비자 보호를 못 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