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사건
정윤석 감독이 지난 1월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사태 당일 부서진 건물 외벽을 찍은 모습. 정윤석 감독 촬영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2009년 용산 참사와 노무현 대통령 서거, 2014년 세월호 참사,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2022년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간 광장의 모습을 기록해왔던 정윤석 감독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를 접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라고 느꼈다. 곧이어 “이것은 꼭 찍어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감독이 서울 여의도 국회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으로, 서울서부지법으로 달려갔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 3개월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기록해왔던 정 감독은 지난 1월19일 서부지법 난입 사태를 촬영하다가 가담자로 몰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그가 이번 사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왔는지, 서부지법에선 어떤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었는지 그간의 맥락은 수사 과정에서 무시됐다. 영장심사 단계에선 그의 소명이 받아들여져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그가 ‘유일한’ 불구속 피고인인 이유다. 63명의 가담자와 ‘공동 범행’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 감독은 그들 사이에서 ‘프락치’로 몰려 집단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자칫 자신의 무죄 주장이 재판부에 부담될까 고민했다. 한겨레는 이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에 그들과의 ‘분리’를 요청하는 정 감독을 만나, 관찰자이고 예술가이면서도 피고인이 돼 버린 사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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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은 지난 1월18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량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둘러싸여 공격을 받는 장면을 뉴스를 통해 보고선 “큰일이다”라고 생각했다. 윤 대통령 체포 국면에서 한 달여 간 한남동 관저 앞 집회를 매일 같이 취재하며 목도한 극우세력의 모습은 “혐오이자,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큰일 났구나. 반드시 이건 폭동으로 이어지겠구나’ 했어요.” 특히 윤 대통령 구속심사를 담당했던 차은경 판사에 대한 위협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보였다”고 했다. 정 감독은 이튿날 새벽 3시 윤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상황이 심각해지자 곧바로 택시를 타고 3시43분 서부지법에 도착했다. 현장은 “전쟁터와 같았다”. 후문 근처 시위대에게서 상황 설명을 듣는 사이 새벽 5시께 법원 경내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정 감독에게 현장을 촬영하는 행위는 “역사적인 사건이고, 동시대적인 사건이다. 당연히 기록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는 돌연 정 감독을 체포한 경찰에 의해 배제됐다. “잠깐, 잠깐만요. 협조할 테니까 잠깐만요. 왜 이러세요.” 당일 5분가량 촬영된 영상에서 정 감독은 화단 쪽에 멀찍이 떨어져 혼란스러운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경찰에겐 카메라를 손에 쥔 채 반항할 의사가 없다는 취지로 두 손을 번쩍 들었고, 취재진임을 밝혔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은 그를 불러 신원을 물었고, 촬영 영상 제공도 요청했다. 지존파 사건을 다룬 ‘논픽션 다이어리’와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고 설리(최진리) 인터뷰를 담아낸 ‘진리에게’ 등 시대적 고민을 담아낸 작품들을 촬영해왔다는 것,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와 제이티비시(JTBC)의 협조 아래 현장을 기록해왔다는 것 모두 수사기관에서 충분히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일반건조물침입으로 입건된 장 감독에게 갑자기 다른 가담자들과 ‘같은 목적’으로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했다. 당시 경찰은 물론, 검찰까지 서부지법 사태에 대해 ‘관련자 전원 구속 수사’ 방침을 정하고 있었다. 경찰은 정 감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의 청구로 구속 심사가 진행됐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이 발생한 뒤 국회 내부를 찍은 사진. 정윤석 감독 촬영
“지난 20년간 4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하고 현장을 취재·촬영해왔습니다. 이번 12·3 계엄 사태 역시 감독으로서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촬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감독으로서, 기록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예술가로서 구속 심사대에 선 그의 주장을 재판부는 받아들였다. 정 감독은 약 80시간 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났다. 이번 63명의 피고인 중 그가 유일한 ‘불구속’ 상태인 것은, 재판부가 그의 행위만 보지 않고 그 배경까지를 참작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경찰은 정 감독을 다른 62명과 묶어 그대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단 한 번의 조사도 없이 정 감독을 기소했다. 공소장에 쓰인 문구는 간단했다. “피고인 정윤석은 그 무렵 위와 같이 법원 경내로 들어간 다음 본관 건물 뒤쪽까지 진입했다.” ‘위와 같이’란 단어로 묶인 정 감독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항의한다는 명목으로 법원 안으로 침입한 자가 됐다.
사실 정 감독은 본인의 사정을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웠다. 수사기관이 당일 본인 행위의 배경을 무시하고 재판에 넘겼다는 점을 지적하며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는 게 가장 쉬웠지만, 서부지법 사태 가담자들이 모두 ‘절차적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이 “빌미가 될까 봐 걱정됐다”고 했다. 또 수사기관이 63명을 한 번에 묶어 공소를 제기하는 바람에 정 감독의 개인정보가 다른 가담자들에게 넘겨졌고, 검찰에게는 극우로, 극우에는 ‘프락치’로 몰리는 상황이 매우 우려스러웠다.
그런데도 이렇게 얘기를 전한 것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으며 무죄를 받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정 감독은 “예술가의 양심과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 권리이다. 앞으로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작업을 하겠느냐”며 “역사적인 사건을 취재한 진보적인 예술가를 극단으로 몰아서 처벌하려고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는 박근혜 정권 시절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피해자였습니다. 의도가 생략된 단순 행위만으로 예술가의 양심을 국가가 판단할 수 없다는 점, 이것이 지난 블랙리스트 사태의 교훈이라는 점을 검찰 쪽에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달 19일 정 감독은 법정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을 압박하려고 간 행위와 예술가로서 기록하기 위한 행위를 “잘 분리해서 살펴주시길” 정 감독은 바란다. 오는 4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나는 날에도, 정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광장에 나설 것이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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