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위기는 기회다. 진부하나 쉬운 말은 아니다. 정말 위기를 기회로 살리려면 반성하고 변해야 한다. 내일(4월 4일) 헌법재판소가 내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론은 한국 정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현 위기의 절정일 것이다. 이 위기를 맞아 여야 정치권 전체가 처절히 반성하고 변하려 한다면 긍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에서 이런 낙관론은 공허할 뿐이다.
여야 양쪽은 내전에 임하는 듯한 호전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지자들은 당장 거리로 뛰쳐나갈 듯한 맹렬함을 예열하고 있다. 과연 헌재 판결에 승복하는 민주적 모습을 보일지조차 걱정스럽다. 오죽하면 판결 당일 폭력적인 시위를 우려해 서울 시내 한복판의 ‘진공상태’가 예고됐겠는가. 경찰은 갑호비상을 내려 헌재 앞 등 여러 곳에 일반인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중이다. 시내의 궁궐·박물관·미술관·문화회관 등이 휴관을 예고했고, 많은 초·중·고교도 휴업을 결정했다. 휴무로 문닫는 가게도 많아 영문 모르는 외국 관광객은 갑작스러운 어수선함에 당황하고 불안할 것이다.
판결 당일의 혼란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이미 양극화된 정치권이 더 극단으로 쏠리며 사회 전체를 대결로 몰아넣는 일이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수년 동안 여야는 극단주의적 책략으로 상대를 거악으로 몰아세우며 내부 단합을 우선시했다. 온건 정치와 중간적 조화는 위선적 기회주의라고 매도한 결과 정치권에서 중도론자는 거의 사라졌다. 이런 이분법적 흑백 균열이 이번 헌재 판결 이후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탄핵 되면 조기 대선 정국으로, 각하나 기각이 되면 상처투성이로 복귀한 대통령의 물 새는 통치로 정치권은 더 센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다. 여야는 각기 선동적 포퓰리즘 방식으로 지지층 유권자들을 자극·동원해 국민 다수가 전면전으로 치닫기 쉽다.
최고위급 정치인들이 자신의 힘과 위상을 지키는 데는 양극적 대결이 유용할 수 있다. 특히, 헌재 심판이 불리하게 난 쪽은 흔쾌히 승복하기보단 각종 구실로 저항의 여지를 남겨 놓으려 할 수 있다. 전면적 불복이 아니어도 심판 절차상의 문제나 심판 내용 중 일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며 조기 대선이나 국정 운영 과정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할 수 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후 순순히 물러나 반대편에 주도권을 넘겼다고 결과론적으로 개탄하는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0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판을 흔들어 4년 뒤 정권을 되찾은 사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우리도…’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할지 모른다.
이렇게 권력 지상주의에 물들어 극단주의적 책략으로 사회를 양극화시키는 정치권에 일반 유권자가 장단을 맞춰선 곤란하다. 삼류 정치권에 유권자가 부화뇌동해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유권자는 냉철한 파수꾼으로서 감시·비판·견제해 정치권이 변하도록 해야 한다. 선거 결과든, 헌재 판결이든 그 결과를 승복하도록 여론이 압력을 가해야 한다. 정치권이 승복의 기본적 문화도 보이지 못한다면 개헌, 선거제도 개선, 의식 개혁 등을 논할 자격이 있겠는가. 이번 헌재 판결을 깨끗이 승복하고 그것을 계기로 반성하고 변하는 정치권이 돼야 한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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