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구진, 20대 남성 정원줄기세포 이식
항암 치료로 무정자증 걸려...자신 세포 활용
치료 받다가 생식력 회복을 위한 시도
정액에 정자가 없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무정자증은 전 세계 남성의 1%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자가 난자를 향해 헤엄치는 모습. /픽사베이
미국의 과학자들이 정자를 만드는 줄기세포를 추출한 다음 다시 몸에 이식해서 정자 생성을 유도하는 최초의 임상 시험에 들어갔다. 항암 치료를 받은 환자나 특정 유전 질환이 있는 사람처럼 정자를 만들 능력이 없는 남성의 생식 능력을 회복할 길이 머지 않아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마기 생식 이식센터와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 오리건 국립 영장류 연구센터, 조지워싱턴대 어린이국립병원 연구진은 20대 초반 미국 남성에게 냉동 보관하던 자신의 정원줄기세포(spermatogonial stem cell·SSC)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임상 시험은 지난 26일 의학 분야의 사전 논문 공개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도 공개됐다.
정원줄기세포는 분화 과정을 통해 정자를 만들 수 있는 세포로, 남성 고환의 정소에 있는 성체줄기세포이다. 이 줄기세포는 굉장히 복잡한 유전자 발현과 호르몬 조절로 정자를 만든다. 만약 유전자와 호르몬 조절에 이상이 생기거나 항암 치료를 위해 화학 요법을 받으면 줄기세포가 손상돼 무정자증과 불임이 된다.
정액에 정자가 없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무정자증은 전 세계 남성의 1%에게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20~50세의 남성 64만5000명이 무정자증을 앓고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7년 이후 5년간 난임 치료를 받은 환자가 16.9%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남성 난임 치료를 받은 환자는 1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난임의 원인은 무정자증(사정액에 정자가 없는 상태), 정자무력증, 희소정자증, 정계정맥류 등 다양하다. 무정자증은 100% 불임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고환에서 정자를 채취하는 접근법은 일부 효과적이지만 시술 과정에서 상처가 생기고 비용이 많이 든다. 과학자들은 정자를 만드는 정원줄기세포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진은 고환에서 정자를 찾아내거나 무정자증이 있는 남성 고환에 자신의 정원줄기세포를 주입하는 비침습적 초음파 유도 정소망(UGRT) 접근법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연구진은 초음파 유도로 정자를 만드는 고환 속 작은 관들이 그물처럼 엮인 정소망(rete testis)에 바늘을 넣어 줄기세포를 채취했다. 채취한 줄기세포는 냉동 보관하다가 나중에 해동한 뒤 고환 속 정자 세관에 넣으면 다시 정자를 만들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수컷 쥐와 원숭이의 정원줄기세포를 이식해서 새끼를 낳게 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이 기술을 사람에게 처음으로 적용했다. 연구진은 2011년부터 2025년까지 여러 치료를 받기 위해 고환 조직을 냉동 보관한 환자 1010명 가운데 대퇴골 골육종을 앓았던 한 20대 남성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했다. 이 남성은 화학 요법을 받고 무정자증을 앓기 전 사춘기 시절 출산 능력을 보전하기 위해 정원줄기세포 조직을 냉동 보관했다. 연구진은 냉동 보존된 줄기세포를 고환에 다시 이식했고 부작용 없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테스토스테론, 난포자극호르몬, 황체형성호르몬 같은 주요 호르몬 수치도 정상을 기록했다. 연구진은 생식 세포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2년마다 정액을 분석한다는 계획이다.
소아암에서 살아남은 성인 환자에게 냉동보관된 고환 세포를 초음파 유도를 통해 주입하는 시술. 초음파 유도 정소망(UGRT) 주입 장치에 환자 세포 현탁액을 넣은 모습(A). 고환의 정소망을 초음파로 찍은 모습(B). 주사 바늘을 음낭 기저를 통해 삽입한 다음 바늘이 정소망 중앙 부분으로 나올 때까지 전진시킨 모습(C). 환자 줄기세포 현탁액 앞의 기포가 정소망으로 채웠고 거품이 정자 세관으로 이동한 모습(D).
줄기세포를 이식한 뒤 이 환자 정액에서 정자가 생성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청소년 시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소량의 줄기세포만 채취한 결과 생산되는 정자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자를 생성하는 세포 수가 적다 보니 정자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생산하는 정자가 적어도 방법은 있다. 환자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경우, 정자가 정액에 별로 포함되지 않더라고 수술을 통해 줄기세포가 만든 소량의 정자를 회수할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생식 센터의 생식 및 내분비학 펠로우인 로라 제멜 박사는 이번 연구와 별개로 정자 추적 회복(STAR) 시스템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 미세유체학을 결합한 이 기계는 남성의 정액에 포함된 몇 안 되는 정자 세포를 식별하고 채취한다. 아이를 임신하는 데는 정자 1개, 난자 1개만 있으면 된다. 실제로 연구진은 앞서 어린 시절 암에 걸린 소녀들의 난소 줄기세포를 채취해 냉동 보존한 다음 이식을 통해 임신까지 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른 의료 시술과 마찬가지로 이 기술도 어느 정도의 위험이 따른다. 이식된 세포가 유전적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을 수 있어서 잠재적으로 종양이 될 수 있다. 백혈병을 앓던 환자의 줄기세포라면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를 사용하지만 면역 체계가 반응해서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미성년자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도 숙제로 남아 있다.
이번 연구를 포함해 정원줄기세포를 이용한 불임 연구는 최근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차의과학대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이동률 교수팀은 2019년 인체의 고환 속에 들어있는 정원줄기세포를 6개월 이상 증식,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연구진은 정원줄기세포를 장시간 체외에서 배양하면 유전자 조작 없이 줄기세포를 이용한 남성 불임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들 연구가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어린 환자에게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저스틴 호먼 시더스 시나이 메디컬센터 교수는 과학전문매체 라이브 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지금보다 기술이 더 개량되고 안전함이 입증된다면 정자를 만드는 능력을 상실한 남성에게 혁신적으로 생식 능력을 되돌려줄 것으로 본다”며 “특히 사춘기 전에 치료를 받은 암 생존자나 유전적, 후천적 성기능 부전을 앓은 남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medRxiv(2025), DOI: https://doi.org/10.1101/2025.03.25.2532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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