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카카오 제공
“우리 부부는 아들 상빈, 딸 예빈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눴던 여러 주제들 가운데 사회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부터 기부금을 쓸 생각입니다.”(2021년 3월16일 ‘더 기빙 플레지’ 서약)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아내 형미선씨와 함께 세계적인 자발적 기부운동 ‘더 기빙 플레지’ 참여자로 이름을 올린 지 4년이 됐다. 사회 문제 해결에 ‘재산의 절반 이상’을 환원하겠다고 밝힌 김 창업자의 기부 약속은 어디까지 지켜졌을까.
■ 재산 절반 기부 약속, 얼마나 이행했나
14일 카카오와 김 창업자가 세운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 창업자가 더 기빙 플레지 서약을 한 2021년 3월16일부터 현재까지 카카오 주식 등을 처분해 기부한 금액은 모두 790억원이다.
주요 기부 내역을 보면, △지방 중증장애인 표준사업장 마련 100억원 △서울재활병원 치료 지원 및 공공재활사업 50억원 △김승섭 서울대 교수 ‘사회적 환경과 조기노화’ 연구 지원 35억3천만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바이오모니터링센터 설립 30억원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수용자 자녀 지원 30억원 등이다.
김 창업자가 가입한 더 기빙 플레지는 2010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부부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만든 기부클럽이다. 재산 10억달러(약 1조4천억원) 이상 억만장자들만 가입할 수 있다. 약속 이행에 대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현재까지의 기부액은 약속한 ‘재산 절반’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기부 약속을 할 당시 김 창업자의 재산은 주식만 10조원을 웃돌았다. 부동산과 주식 이외 금융자산의 규모는 알려진 바 없다. 이날 기준 김 창업자의 보유 주식 평가액은 약 4조5천억원이다. 지난 4년간 카카오 주가가 크게 떨어진 탓이다.
■ 불리한 여론 무마용 처방?
김 창업자의 기부 이행률에 관심이 쏠리는 건 재산 환원을 부유한 대기업 창업주의 ‘선한 마음’으로만 해석할 순 없기 때문이다. 기부 계획이 발표된 시점은 김 창업자와 카카오를 둘러싼 여러 잡음이 이어지던 때였다.
2021년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가맹택시 ‘콜 몰아주기’ 의혹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카카오는 헤어샵·카풀 등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창업자 자녀들의 경영권 승계 논란도 불거졌다. 당시 ‘재산 절반 환원’이 카카오와 김 창업자에 대한 불리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나온 처방이란 평가가 무성했던 까닭이다.
과거 재벌그룹들의 사례는 이런 의구심을 더 증폭시킨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로 드러난 차명계좌에 대해 “세금 납부 뒤 남는 돈을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겠다”고 발표했다. 박용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차명계좌 규모를 4조5천억원 정도로 추정했는데, 삼성 쪽은 2021년 유족이 1조원과 고 이 회장이 남긴 2만여점의 고가 미술품 등을 기부한 만큼 약속을 이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고 이 회장은 2006년에도 ‘안기부 엑스(X)파일 사건’을 계기로 약 8천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도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2006년에 1조원어치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 이듬해 사재 8500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었다. 이 재단은 그동안 사회공헌 사업에 2893억원(2024년 말 기준)을 썼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과거 재벌 총수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카카오 쪽은 “기빙 플레지 서약을 위해 심층 인터뷰, 평판 조회 등 약 6개월간 사전 절차를 밟았다. 당시 여론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라고 밝혔다.
■ 카카오 “특정 금액 정한 기부 아니다”
걸음마를 시작한 김 창업자의 기부 이행은 언제쯤 완료될까. 예단하기 어렵다. 기부 서약 때 밝힌 ‘재산 절반’의 기준부터 모호하다. “(더 기빙 플레지는) 특정 금액을 정해 기부하고 종료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정확한 기부액은 지금 시점에 답할 수 없다”는 게 카카오 쪽 설명이다.
김 창업자의 재산 상당 부분이 카카오 관련 지분이라는 점도 약속 이행 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 창업자의 보유 지분은 카카오에 대한 지배력과 연결되는 만큼 기부 속도는 회사의 지배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카카오 쪽도 “(기부를 위해 주식을 단기간에 대량 처분할 경우) 주주들의 손실과 경영권 위협 등 리스크를 고려해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카카오는 이날 김범수 창업자가 건강상 이유로 그간 맡고 있던 그룹 컨트롤타워인 시에이(CA)협의체 공동 의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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