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 3차 발사가 진행되고 있다. 항우연 제공
세금 2조원이 투입돼 개발되는 '차세대 발사체'를 재사용이 가능한 발사체로 개발하겠다는 우주항공청(우주청)의 사업변경 계획이 지난달 공개된 가운데 변경될 사업범위의 구체적인 윤곽이 확인됐다.
엔진 연료로 케로신(등유)을 쓰는 '다단연소사이클(폐쇄형) 엔진 개발'이 사업범위에서 빠지는 게 골자다. '케로신 기반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은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통과시 명시된 바 있다.
대신 메탄을 연료로 쓰는 '개방형 사이클 엔진'을 기반으로 재사용 가능한 차세대 발사체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케로신 기반 개방형 사이클 엔진을 쓴다. 누리호를 통해 노하우를 확보한 개방형 사이클 엔진의 연료를 메탄으로 바꿔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우주청은 "2032년 달 착륙선 발사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개발은 당시 예타 통과의 핵심이었다. 현재 '국가전략기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우주청의 방안에 대해 "예타를 통과한 사업내용의 본질을 바꾸는 것으로 절차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기술적 후퇴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우주청은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과는 별개의 신규 사업을 통해 다단연소사이클엔진 개발을 이어갈 계획을 검토중이다.
●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빼고 연료 '메탄' 전환하는 차세대발사체
13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우주청은 스페이스X의 주력 발사체 '팰컨9'처럼 1단 엔진을 재사용하는 방식의 차세대 발사체를 우선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2032년 달 착륙선 발사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다.
완전 재사용 발사체에 필요한 2단 재사용 기술은 신규 사업으로 개발하는 전략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2032년 이후부터 완전 재사용 차세대 발사체 기술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이 과정에서 '2032년 달 착륙선 발사'를 포함한 1~3차 발사의 경우 1단 엔진에만 재사용 기술을 적용한 일회용 발사체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발사체 수직이착륙, 단 인증 시험, 발사체 회수 등 재사용 발사체에 필요한 기술 시험을 진행한다. 이후 기술 고도화와 완성은 발사를 맡는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2032년 이후 우주청은 새로운 사업으로 완전 재사용이 가능한 발사체 개발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 같은 우주청의 계획은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의 예산을 대폭 늘리지 않아도 돼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재사용 발사체를 2030년대에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은 지난 2022년 11월 예타를 통과했다. 총 사업비가 15% 이상 증가하면 타당성 재조사를 받아야 한다. 우주청은 차세대발사체에 들어가는 엔진과 탱크도 1종류로만 만들어 개발 기간을 더 단축시킬 예정이다.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 내용을 큰 틀에서 변경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당초 예타 통과 때부터 차세대발사체는 일회용으로 개발되고 재사용 기술을 '일부' 개발하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재사용 기술을 개발하는 계획이 사업 내용에 이미 포함돼 있어 차세대발사체의 재사용 전환이 사업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우주청이 예타 보고서에 명시된 100톤(t)급 케로신 기반의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개발 내용을 빼는 방향으로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 변경을 검토한다는 점이다. '폐쇄형 사이클'이라고도 불리는 다단연소사이클은 터보 펌프가 작동할 때 나오는 배기가스를 다시 연소기에 넣어 재활용할 수 있는 엔진이다. 누리호에는 배기가스를 터빈을 돌려 배기구를 통해 밖으로 보내는 개방형 사이클 엔진이 적용돼 있다.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은 버려지는 가스를 다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개방형 사이클 엔진보다 효율성이 약 10% 좋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먼 거리를 비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술이다. 대형 다단연소사이클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결정한 국가전략기술이기도 하다.
우주청은 메탄 연료 기반의 개방형 사이클 엔진을 탑재한 차세대발사체로 달 착륙선을 쏘아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박재성 우주청 우주수송부문장은 "대형 다단연소사이클은 기술 수준이 높아 완성하는 데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2032년 달 착륙선 발사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누리호를 통해 노하우를 확보한 개방형 사이클 엔진을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술적 퇴보냐 미래 대비냐
이같은 우주청의 계획이 사업의 핵심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은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의 중요성을 핵심적으로 강조하며 예타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예타 보고서에 따르면 차세대발사체 엔진은 1단에 100t급 다단연소사이클 액체엔진 5기, 2단에 10t급 다단연소사이클 액체엔진 2기를 묶어 누리호의 3배 성능을 내도록 설계됐다.
우주청 계획을 검토하는 국가우주위원회(국가우주위),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 내에서 '기술적 퇴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항공우주 분야 대학 교수는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은 재사용 발사체에 활용할 수 있고 기술적 수준이 높아 예타 당시 정부는 대형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을 개발해 2030년대에 우주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면서 "이제 와서 국가전략기술 개발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기술적 후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2년 예타 통과 당시 과기정통부에서 발표한 차세대발사체와 누리호 성능 비교 표. 과기정통부 제공
우주청은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의 국가전략기술로서의 중요성을 고려해 새로운 사업으로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개발을 계속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단, 메탄 연료 기반의 엔진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라 기존 케로신 기반의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연구자들은 개발 방향을 다소 수정해야 한다. 차세대발사체 개발사업 설계 당시 항우연이 개발 중인 케로신 기반의 10t급 다단연소사이클기술 엔진을 키워 대형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을 완성해 차세대발사체에 도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박 부문장은 "케로신보다 메탄이 추력 조절, 재점화 등 재사용기술을 개발하기 용이하고 다루기 쉬워 속도감 있게 엔진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 세계적인 개발 추세인 메탄 엔진 개발을 시작해야 2030년대에 케로신과 메탄 엔진을 모두 손에 넣어 다른 우주 선진국과 겨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문장은 또 "케로신 기반의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기술을 메탄 기반의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주청의 계획을 두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사업 내용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절차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항공우주 분야 교수는 "엄연히 예타라는 절차를 통해 통과된 2조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의 계획을 크게 변경하는 것은 다른 사업에도 예타 같은 행정절차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인을 줄 수 있다"라면서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내용을 변경해야겠다면 예타 당시 계획을 잘못 세웠다고 누군가는 인정하고 책임을 진 뒤 사업 내용을 변경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2022년 예타 통과 당시 과기정통부가 차세대발사체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 중 일부. 다단연소사이클로 차세대발사체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제공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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