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 액세스답게 과제 많지만 기본기 탄탄하니 잠재력은 충분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의 팬이라면, 아무래도 10년간 신작을 내지 않는 EA를 향한 애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체재가 없어 10년째 심즈를 플레이하고는 있지만 슬슬 답답한 마음이 든다.
후속작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던 프로젝트 르네가 '사실은 후속작조차 아니었습니다'라는 결말을 맞이했고, 심즈 전 개발진이 만들어 정신적 후속작 취급을 받던 '라이프 바이 유'의 개발이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파라라이브의 경우 출시일조차 공개되지 않아 개발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다.
크래프톤 '인조이'에 쏠린 많은 기대도 이런 상황이 한몫했다. 언리얼 엔진5로 화려한 그래픽, 유저가 만든 커스텀 콘텐츠 아이템 없이도 자연스러운 한국 배경은 한국 게이머를 설레게 할 수밖에 없다. 여러 최신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소식도 '역시 게임은 신작이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테스트 플레이를 해 본 인조이는 '얼리 액세스'라는 본질에 충실했다. 게임의 기본 베이스와 잠재력은 충분히 보여줬다. 심즈조차 10년에 가까운 유료 업데이트와 DLC가 쌓이며 '할 만한 게임'이 됐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정식 출시를 기대할 만한 퀄리티다.
장르: 인생 시뮬레이션
출시일: 2025년 3월 28일
개발사: 크래프톤
플랫폼: PC
■ 유려한 그래픽과 강력한 커스터마이징, 자유로운 건축
- 정말 세세한 디테일까지 손댈 수 있다
- 가구 리컬러링도 쉽고 재질도 선택 가능하다
인조이를 얘기하면서 아무래도 그래픽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게임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언리얼 엔진5를 사용한 유려한 그래픽이다. 당장 경쟁작들이 실사보다는 카툰 풍에 가깝다 보니 눈에 확 띈다.
커스터마이징을 할 때에는 기대감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정말 디테일한 수준까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했다. 인게임에서 이 정도의 그래픽을 구현하려면 엄청난 사양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실시간 연산 작업이 많은 시뮬레이션 장르라면 더욱 그렇다.
야심차게 넣은 블러셔와 립이 귀신같이 붉게 뜨는 모습을 보고 슬프긴 했지만, 광택도 컬러도 신경 써서 조절한 애굣살 하이라이터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결과를 보고 굉장히 슬펐지만, 중간에서 높음 정도의 사양으로도 크게 텍스처가 뭉개지지는 않았다. 머리카락 디테일 정도가 아쉬운 수준이다.
건축 기능도 매우 훌륭했다. 기자는 건축을 깊게 파고 드는 편은 아니라 적당히 기존 제공 모델을 수정하는 정도로 사용했는데, 리컬러링도 편하고 벽이나 울타리 등 수정 작업도 간편했다. 사실 아무리 최신 엔진을 사용해도 텍스처가 벽을 뚫는 현상을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어렵다 보니 나무가 담을 뚫는 정도는 애교로 봐 줄 만하다.
- 그린 것 같은 해변가 블리스베이의 풍경
- 익숙한 빌딩 숲과 녹지 공원이 특징인 도원
기자는 도원과 블리스베이 모두 플레이했는데 각 도시의 특색을 살려 디자인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도원은 편의점과 PC방, 카페, 코인 노래방, 빌딩과 아파트로 가득한 익숙한 한국 거리를 연상시키고, 블리스베이는 미드에서나 보던 캘리포니아 해변가처럼 서핑 보드점과 해변 공원, 스케이트 장 등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시의 구현도 자체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아직 얼리 액세스 단계라 그런지 건물에서의 세세한 상호작용은 불가능했다.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하는 정도는 가능해도, 서핑 보드점에서 보드를 빌려 서핑을 즐기거나 스케이트 장에서 스케이트를 빌려 탈 수는 없다. 기분을 내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야외무대 오브젝트가 있다면 당연히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마침 공연 MAX, 가창 MAX의 아이돌 연습생 조이를 키우고 있던 터라 뭔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한참을 주변에서 맴돌았는데, 결국 거대 배경 구조물이었다. 전체적으로 도시의 구현 정도에 비해 오브젝트 활용이 아쉽다.
■ AI 활용한 창작 기능 및 스마트 조이 기능
- 3D 오브젝트를 만들고 기존 가구에 덧씌우면 적절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 AI 텍스처 생성 기능도 키워드만 잘 활용한다면 성능이 나쁘지 않다
개발사는 출시 전부터 야침차게 AI 활용 기능을 홍보했다. 이 기능 때문에 인조이의 요구 사양이 더 높아졌다고 생각해서 과연 어느 정도일지 기대감이 컸다.
플레이 테스트 중 가장 기대했던 대목은 AI 영상 분석을 통한 모션 제작 기능이었다. 안타깝게도 영상은 분석이 온종일 걸리는 데다 오류 스크립트가 반복적으로 발생해서 포기했다.
AI 이미지 분석은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3D 프린터를 통해 오브젝트를 구현하거나 분석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모션을 제작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활용도가 높았던 기능은 3D 프린터다. 평면적인 이미지로도 사면이 꽤 잘 구현되는 편이고, 오브젝트에 씌울 수 있어서 다방면으로 유용했다.
스마트 조이는 출시 전부터 엔비디아와의 협업, CPC 모델 적용 등 듣기만 해도 설레는 수식어로 가득한 기능이다. 스마트 조이를 켜자마자 그래픽 단계를 한 단계 낮췄음에도 프레임 드롭이 심해졌다. 그만큼 리소스를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마트 조이를 켜고 드라마틱한 플레이 체감을 느꼈는가.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 스마트 조이에 어떤 변화를 기대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자의 경우 상호작용 강화 등의 현실감을 기대해서 그렇다.
- 스마트 조이 기능을 켜면 조이의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영어로)
- 실감나는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해 줄 조이펜 기능(영어 못하는 사람 없죠)
가창 MAX의 조이가 공원에서 버스킹할 때 가던 조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귀담아듣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것들은 애초에 상호작용의 영역이다. 스마트 조이 기능으로 아무리 주변 환경을 잘 파악해도 그 기능을 지원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거리 공연에서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주변 인물을 끌어들인다는 정해진 알고리즘에 의한 결과다. 스마트 조이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동일하게 반응한다. 정작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버스킹 시에는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재능 레벨별로 다른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다.
스마트 조이의 기능은 현재로서는 조이의 속마음 읽기 및 조이펜 자유 입력을 통한 조이 행동 변화 정도다. 조이펜으로 조이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행동 방식, 사고 양식 등을 직접 입력할 수 있는데,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 꽤 흥미로운 기능이다.
다만 속마음 읽기, 조이펜 두 기능 모두 영어만 지원한다. 챗지피티나 딥엘 같은 AI 번역이 보편화됐다고는 해도 게임 내에서 모국어를 읽고 쓰는 편리함과 번역 과정을 거치는 번거로움은 아무래도 플레이 감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 기본기 탄탄하지만 버그나 이벤트 부족 아쉬워
- 대화 배리에이션 자체는 굉장히 넓은 편
- 요리나 먹는 모션이 특히 디테일한 편이다
상호작용은 시뮬레이션 장르의 꽃이고, 알파이자 오메가다. 아무리 기깔난 기술로 현실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긴 듯한 구현도를 보여줘도 정작 그 속의 인물이 뚝딱거리면 몰입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시대극 속 엄청난 의상과 배경의 디테일에 감동했다가도 배우의 발연기에 확 깨는 것처럼 말이다.
인조이의 베이스 자체는 나쁘지 않다. 애정, 친밀, 비즈니스로 관계 성격을 나누고 각 관계 단계별로 다른 화제를 제공한다. 관계 단계가 상승할수록 대화 거리의 종류가 다양해지며, 해당 조이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가령 평온한 상태에서는 일상에 감사하는 주제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모션 캡처를 사용한 디테일한 모션 역시 즐거움을 준다. 워낙 그래픽이 리얼하다보니 몇몇 모션은 과장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잘 어울리는 편이다. 카르마 수치에 따라 해당 조이의 운이 좋거나 나빠질 수 있고, 도시 전체의 카르마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시스템도 신선했다.
SNS 기능이 완전히 해금되지는 않았지만 관계에 따라 문자가 오거나 선물이 오기도 한다. 이벤트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가까운 상대는 홈 파티에 초대하거나 하는 식으로 이벤트를 열 수도 있다.
- 관계, 조이 상태에 따라 가능한 대화의 폭이 넓어진다
-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방문자 이벤트(그냥 평범한 방문 이벤트다)
다만 얼리 액세스 단계라 그런지 상호작용이 아직 많지는 않고,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 몇몇 장소의 경우 애초에 입장 및 실시간 활동이 불가능하다. 특정 스케줄 때 택시 안에서 수행 중이라는 알림이 뜨는 정도가 전부다.
오브젝트는 주변에 물체 자체가 아예 없는데 뭐가 문젠지 '사용할 수 없습니다'만 반복해서 띄워서 유저를 답답하게 만든다. 특히 결혼식을 치르고 조이를 다른 가족으로 이동했더니 그대로 신부가 증발하는 버그는 정말로 신박했다. 결혼이 무덤이라는 말이 있기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신부를 공중분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랜덤 발생 이벤트도 거의 없다. 집에 있을 때 이웃이 찾아오거나 청소년 조이가 학교에서 발생한 일을 보고하는 것 외에는 약 30시간의 플레이 동안 돌발 이벤트를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층간 소음 문제로 찾아왔다길래 본격적인 이웃 싸움이 벌어지나 싶어서 두근거렸는데, 초대를 받아들인 후 대화는 통상 상태와 다름없었다.
도원은 특히 길 가던 도 믿는 사람이 붙잡는다든가, 노숙자가 구걸을 요구한다든가, 갑자기 거리의 행인이 싸우기 시작한다든가 하는 1호선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과 같은 여러 이벤트를 구현할 수 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 얼리 액세스답게 잠재력은 충분하다
- 지금은 만년 연습생에서 퇴직하지만 업데이트되면 월드 클래스 아이돌도 될 수 있겠지
- 결혼식 끝나고 가구 합치자마자 신부가 증발하는 이런 버그도 없겠지
열거한 대부분의 단점들은 '얼리 액세스'라는 한 단어로 정리 가능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비교군이 아무래도 10년 넘게 업데이트를 쌓아 온 게임이라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을 해주는 아량이 마땅하다.
게다가 인조이의 게임 기반 자체는 매력적이고 탄탄한 편이다. 훌륭한 그래픽과 최신 AI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인게임 기능들, 각종 시뮬레이션 상황에서 현실감을 살려 줄 스마트 조이 기능 등 앞으로 업데이트가 지속된다면 시너지를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다만 시뮬레이션 환경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연령대 변경, 다른 조이 설정 변경 등을 인게임 기본 모드에서는 제공하지 않아 아쉽다. 온라인 쇼케이스에서도 군중 단위의 조이 제어 등을 언급한 사례로 보아, 한동안은 업데이트 예정이 없어 보인다.
현재로서의 인조이는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 게임으로서 100% 만족할 만한 게임은 아니지만, 얼리 액세스 버전에서의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이후 꾸준히 이어질 업데이트로 여러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강할 지가 중요하다.
장점
1. 수려한 그래픽과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징
2. AI 생성형 기술을 활용한 각종 창작 지원 기능
3. 훌륭한 건축 기능
단점
1. 각종 버그와 오류
2. 상호작용과 이벤트 부족
3. 특정 기능에서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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