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 핵연료를 이용해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시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올해 초 한국이 미국 에너지부(DOE) 민감국가 목록에 올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10년 넘게 한국과 미국이 공동연구를 진행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자력발전소(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고 방사성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핵심기술로 미국이 한국에 먼저 제안해 진행중인 연구다.
20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민감국가 지정에 따라 한국 연구자들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를 할 때 지켜야 하는 사전 출입신청과 신원조회 조건 등이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분야에서는 이미 적용 중이다. 민감국가로 지정돼도 특별한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된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 차질 우려에 대해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포함한 모든 연구에서 행정적인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며 "특히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는 앞으로도 특별한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고 밝혔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전 등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하기 전에 재처리하는 방법이다. 사용후핵연료에서 원료인 우라늄을 회수해 재활용하고 방사성폐기물 부피를 최대 20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
원자력연은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기관인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와 파이로프로세싱을 공동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기술 타당성 검증 단계를 지나 실증 단계로, 실증 연구는 미국이 먼저 요청·제안해 진행 중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 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지역 불안정 등을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CL)'에 포함시킨다. 한국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 말인 올해 1월 초 SCL에서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됐다. 민감국가 목록은 한국을 포함하면 총 26개국이다.
한국이 민감국가 목록에 오르면 원자력 등 미국 에너지부 산하 17개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에서 한국 연구자들에게 추가적인 행정 절차 요구와 정보 접근 제한, 심사 기준 강화 등이 적용될 수 있다. 연구시설 방문 또는 연구시설 접근 시 45일 전 사전 출입신청과 신원조회 절차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한미 공동연구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기존에도 미국 연구소의 제한구역, 제한시설에 접촉해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국가'로 등록된 현재도 한국 연구자들의 45일 전 사전 출입신청과 신원조회 등의 행정절차가 이미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연구에 필요한 정보 접근 과정에서도 정보 종류에 따라 허가 절차를 진행해 왔다.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에 국한해서 본다면 현재로서는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원자력연은 "현장의 한국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자들은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라며 "아직 발효 전이기도 하고 연구현장에서 실제로 체감하는 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자들이 심리적 부담 등 비정형적인 영향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민감국가 지정 발효일은 4월 15일이다. 한국은 1980년대와 90년대에도 민감국가에 포함됐다 해제된 사례가 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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