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달걀 껍데기 번호의 정체는?
● 달걀 번호 조사하다
지난 1월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우리나라 달걀 생산업체와 판매업체 등을 대상으로 특별 검사를 진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달걀에 쓰여 있는 번호인 난각번호를 검사했어요. 검사 결과 12곳이 난각번호를 거짓으로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난각번호는 달걀 껍데기인 난각에 달걀이 나온 날짜와 장소, 환경을 담고 있습니다. 난각번호 맨 뒷자리 수는 달걀이 산란된 환경을 담은 번호로 1번부터 4번까지 있어요. 4번은 한 마리 닭이 사는 면적이 0.05m2인 케이지를 의미해요. A4용지보다도 좁은 면적입니다.
3번은 이보다 더 넓은 0.075m2 면적당 한 마리 닭이 사는 케이지입니다. 2번은 닭이 날개를 펴고 퍼덕이고 돌아다닐 수 있는 더 자유로운 환경이에요. 닭이 사다리 등을 타고 오르내리는 다단식 평사나 바닥에서 키우는 평사가 있지요. 1번은 닭이 사육장 안이나 밖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방목장 같은 환경입니다.
달걀 난각번호(1-2)의 의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난각번호가 달걀에 표시되기 시작한 건 2019년입니다. 이전까지는 달걀 껍데기에 달걀이 생산된 지역과 농장 정보만 있었어요. 2017년 우리나라 계란에서 피프로닐이라는 살충제 성분이 나온 뒤로 우리나라는 달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려주기 위해 난각번호 표시를 의무화했습니다.
달걀 난각번호(3-4)의 의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달걀을 생산하는 농장이나 유통업체 또는 판매 업체는 기계를 이용해 식용색소로 달걀에 난각번호를 찍어요. 지난 1월 식약처의 검사 결과 일부 달걀 관련 업체는 방목장에서 산란된 달걀이 아닌데 달걀에 1번이라고 써서 더 비싼 가격에 팔았습니다.
산란 일자를 실제보다 최근인 것처럼 쓰기도 했어요. 식약처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업체에 경고 등을 내린 뒤 재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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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각번호 왜 필요할까?
● 닭이 사는 환경 중요하다
난각번호 끝자리 수인 사육환경 번호는 달걀의 영양 성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다만 자유로운 행동이 제약되는 환경일수록 닭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지난 2월 12일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이에 대한 연구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닭은 모래 목욕을 하는 본능과 높은 곳에 올라가는 본능이 있다. 모래 목욕을 위한 깔짚(가운데)과 올라가 앉을 수 있는 횃대(오른쪽)가 있으면 닭이 더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윤진현 교수팀은 사육환경 번호 3번 환경에 사는 닭과 2번인 다단식 평사 농장에 사는 닭의 스트레스 지수를 비교했어요. 두 환경에서 나온 각각 45개의 달걀노른자에 담긴 성분을 분석한 결과 3번에 사는 48주 나이의 닭이 낳은 달걀이 2번 48주 닭이 낳은 달걀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 농도가 두 배 정도 더 높았습니다.
닭에게 생긴 스트레스 호르몬이 달걀에 남아 있었던 거예요. 이 결과를 통해 3번 닭이 2번 닭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윤진현 교수는 "닭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해서 닭을 가두지 않고 닭이 본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육환경 번호 1번이나 2번 환경에는 행동 풍부화를 돕는 장치를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행동 풍부화는 사육하는 동물이 야생에서처럼 행동하거나 재미를 느끼도록 장난감과 장치를 개발하는 방법이에요.
닭은 높은 곳에 올라가 두려움을 줄이려고 하는 본능이 있고 몸에서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모래 목욕을 하려는 본능도 있어요. 높은 위치로 올라가 앉을 수 있는 횃대와 모래 목욕을 위한 깔짚을 사육 환경에 깔아주는 행위가 행동 풍부화가 될 수 있습니다
사진 속 파란색 구조물은 슬랫이다. 닭은 슬랫을 발로 잡은 뒤 높은 곳에 올라 편안함을 느낀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공간이 좁은 케이지와 달리 바닥에서 생활하는 평사 사육장이나 계단이 있는 다단식 평사에서는 이러한 장치를 설치할 만한 여유 공간이 있습니다.
사육환경 번호 1번 농장에서 닭을 자유 방목해 사육하는 청미래농장 김미지 대표는 "소나무 밑에 있는 썩은 낙엽을 주워 만든 부엽토라는 흙을 닭에게 깔아주고 햇볕이 강한 날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차광막도 설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좋은 달걀을 낳으려면 우선 닭의 상태가 좋아야 하기 때문에 닭의 건강과 스트레스 조절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원하는 환경의 달걀을 고르려면?
● 원하는 달걀 찾으러 마트 가다
3월 10일 기자는 달걀을 구매하려 마트에 갔어요. 기자는 자유 방목 환경에서 횃대를 이용하는 닭이 낳은 달걀을 구매하기로 결심했지요. 달걀 판매대로 가자 달걀 포장지에는 ‘행복한 닭이 낳은 달걀’과 ‘1등급 계란’ 등의 문구가 있었고 사육환경 번호는 안 써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포장재만 보고도 사육환경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있어요. '동물복지' 마크가 있으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생산한 달걀입니다.
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은 닭을 위한 횃대와 깔짚이 있을 뿐 아니라 닭의 자연스러운 생활을 위해 8시간 이상은 조명을 밝게, 6시간 이상은 어둡게 유지해요. 닭의 자세와 호흡, 깃털을 매일 검사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농장 이름으로도 사육환경을 알 수 있어요. 포장재에 QR이 있다면 QR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보세요. 닭을 키운 농장 이름이 나와요. 국가동물 보호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동물복지 축산농장’ 메뉴에 농장 이름을 검색하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육환경 번호가 1번인 달걀. 유기농 마켓에서 포장재에 1번이 쓰여 있는 달걀을 찾을 수 있었다.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이날 농장 검색을 통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사육환경 2번 달걀을 구매했어요. ‘자유 방목’이나 ‘행복한 닭’이라는 문구, 닭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그림 때문에 사육환경 1번으로 오해한 달걀도 있었습니다. 또 포장재에는 ‘자유 방목’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포장재를 열면 사육환경 2번인 달걀도 있었습니다.
2024년 동물자유연대는 1000명이 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더니 66%의 소비자가 포장재만 보고 동물복지 인증을 받지 않은 달걀을 인증받은 달걀로 오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어요.
포장재에 대한 의견을 묻자 46.6%의 소비자가 닭 사육환경이 한글로 표기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했고 20%의 사람은 사육환경 번호와 한글, 아이콘을 더해 표기했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포장재에 있는 QR을 찍으면 달걀을 생산한 농장 이름을 알 수 있다. 농장 이름을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 검색하면 동물 복지 인증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과학동아,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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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빈 기자 robyne9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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